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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O아, 남의 물건에는 욕심을 내면 안 된단다."
 

 초등학교를 다닐 때였습니다.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놀다가 우연히 값비싼 게임기를 주웠죠. 그 게임기는 그 당시 돈으로는 3만 원이 넘는 가격이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들에게 빌붙어 ‘백 원만’을 외치던 제게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가의 물건이었습니다. 평생을 꿈꿔왔지만, 심지어 지금조차도 가지지 못한 게임기. 어린 마음에 친구들 몰래 조용히 품속에 숨겨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저는 끝내 그 게임기를 사용해보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어려서 그랬는지, 순수해서였는지, 양심의 모서리가 매우 뾰족했었나 봅니다. 유년시절, 종종 남의 물건에 욕심을 내다가 부모님께 호되게 혼나곤 했던 저는, 그 게임기를 주웠다는 것이 곧 남의 물건을 훔쳤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우편 반송함 깊숙이 넣어 두고는 며칠간 찾지 않았습니다. 물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며칠 뒤 그곳을 다시 찾았지만 게임기는 어디론가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또 다른 누군가가 주워갔을 테지만, (아마도 집배원 아저씨겠지) 저는 주인에게 돌려주었다는 생각에 홀가분해졌었습니다.

 


 

 시간은 어느새 흐르고 흘러 저는 키가 큰 대학생이 되었고, 그 게임기 사건 이후로는 주인이 있는 물건을 한 번도 주워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학교를 마치고 배가 아파 잠시 화장실에 들렀던 날이었습니다. 어두운 바닥에 네모난 물건이 있어 집어 들었더니 누군가의 지갑이었습니다. 당연히 주인을 찾아줘야겠다고 생각하고 지갑을 펼쳤지만, 이상하게도 그 지갑에는 아무런 신분증도, 카드도 없었습니다. 오로지 초록색으로 된 현금만이, 그것도 만 원, 이만 원도 아닌 십만 원이 넘는 거금이 들어있었습니다. 그때 곧바로 행정실에 가져다주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가방에 넣었습니다. 나중에 주인을 찾아주면 되겠지. 잃어버린 사람이 지갑을 찾는 전단지를 붙이겠지. 하지만 그것은 제 무의식 속의 욕심이 발현한 순간이었습니다.

 

 돈이 필요할 때마다 저는 야금야금 지갑을 열었습니다. 몸에 지니고 다니던 그 지갑은 내용물만 감쪽같이 사라졌고, 찾아주어야 한다는 정의감 또한 함께 사라져 갔습니다. 어느새 텅 비어버린 지갑은 인적이 드문 거리의 쓰레기통에 제 양심과 함께 버려졌습니다. 그렇게 제 양심의 모서리는 깎여 없어졌습니다. 이 일은 지금까지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제 인생에서 가장 못된 행동이었습니다.

 


 

 우연히 얻어진 것들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게 하여 도로 되돌아가거나, 오히려 죄책감을 씻어보려고 순식간에 사라지게 하였습니다. 전자는 그나마 욕심을 떨쳐내고 뿌듯함과 떳떳함을 다시 찾았지만, 후자는 그 욕심 때문에 씻을 수 없는 죄책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 지갑 사건 이후로는 두 번 다시 욕심을 부리지 않기로 했습니다. 우연히 얻어지지 않는, 제 스스로의 노력으로 인해 얻어지는 것만 가지려 했습니다. 학점을 위해서 단 한 번의 무임승차 없이 항상 최선을 다했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도 요령 한 번 피우지 않았습니다. 노래방에서 우연히 주운 최신형 스마트폰을 주인이 얼마나 애타게 찾을지를 생각하며, 곧바로 주인을 찾아 돌려주었습니다. 그렇게 평생을 살려고 했습니다. 뿌듯하고 떳떳하게. 노력에 대한 응당한 대우를 받으며.

 

 

흔히 욕심은 안 좋은 것으로 치부됩니다.

 

 그러나 저는 지금 다시 욕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아니 사실은 욕심을 버리려고 했는데, 어쩌면 욕심이 아닐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바라고 있습니다. 이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서 그렇게 많은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알지만,  일생일대의 이 기회 앞에서, 그래도 내가 자격이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욕심이 돈이 드는 것도 아닌데, 욕심을 가진다고 해서 죄가 되는 것도 아닌데. 살아오면서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처럼, 우연히 얻어진 것은 결국 쉽게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그렇게 사라진 것에 대해 더 가슴 아플 것을 알면서도, 저는 욕심을 부리고 있습니다.

 

 상처받을 것을 대비해서 저는 스스로를 끊임없이 달래고 있습니다. 욕심부리지 말자. 욕심부리지 말자. 그 자리는 내 자리가 아니다. 지금까지 한 것만 해도 정말 잘했다. 그 자리가 제 자리가 되지 않는다면 사실 아무런 의미도 없어지겠지만, 그래도 나는 아니까. 내가 그곳까지 갔었다는 걸. 거기에 좋은 경험 했다고 생각하며 살자. 욕심을 내고 기대를 하면 너무 아프잖아. 만약에 욕심이 정말 그저 욕심뿐인 걸로 된다면, 너무너무 아프니까. 오르지 못할 나무, 이제 그만 쳐다보자.

 

 

"욕심 같은 소리하고 있네."

 

 "그게 왜 욕심이냐? 너는 네가 제치고 올라간 수많은 취준생들의 대표로 그 자리에 있는 거야. 그 사람들 앞에서 욕심 운운하면 돌 맞아, 정신 차려. 책임감을 가져야지. 기업들이 너를 실수로 그 자리에 올렸을 것 같아? 그렇게 기업이 허술해 보이냐? 아니야. 네가 그 기회를 얻었다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히 있다는 뜻이야. 욕심이 뭐 돈이 드냐, 뭐가 드냐. 네가 주인 있는 자리를 부당하게 빼앗은 것도 아니고, 정정당당하게 겨뤄서 주인을 가리자는 건데, 그게 어떻게 욕심이냐? 욕심부려. 마음껏 부려."

 

 저는 다시 스스로를 합리화하며 욕심을 부리게 됩니다. 오르지 못할 나무도 물론 있지만,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또한 없다고 생각하면서요. 욕심인지 아닌지 사실 잘은 모르겠지만요, 욕심, 정말 부리면 안 되는 걸까요? 탐욕에 대한 화를 당하더라도 저는 다시 욕심을 부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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