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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 OO 씨는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신의 가장 큰 강점이 뭐라고 생각해요?”

 

 길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그래도 살아오며 말을 못 한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남들보다 발표도 곧 잘하고, 대화도 쉽게 이끌어나가는 편이죠.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선다고 해서 크게 긴장을 하거나,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즐긴다는 편이 가까울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면접에 정말 자신이 있었습니다. 면접만 가면 다 이길 수 있다고 자신했습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저는 살아오면서 면접이라는 것을 제대로 경험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대학도 정시로 들어갔고, 이렇다 할 인턴십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런 저의 첫 번째 면접은 2년 전 여름의 한 스타트업에서 보게 되었던 면접이었습니다.

 

 꿈에 그리던 판교에 도착하여, 거대한 엔씨소프트의 사옥을 지나 회사로 향했습니다. 다른 지원자들보다는 조금 더 일찍 도착하였습니다. 곁눈질로 흘겨본 회사의 분위기는 꽤 괜찮아 보였습니다. 그런 생각에 더욱더 합격하고 싶어 졌었습니다. 면접자는 총 4명, 면접관은 2명으로 진행되었습니다. 공통질문이 하나씩 들어오기 시작했고, 지원자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자신의 경험을 풀어나갔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저의 첫 면접은 너무나도 불편했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옆에서 잘해보자며 서로를 응원하던 사람들이, 면접이 시작되자마자 눈빛이 달라져서 자신을 뽐내기 시작했으니까요. 그 모습은 마치 자신이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발버둥 치는 것 같았습니다. 버스가 왔을 때 서로 먼저 타기 위해 옆 사람을 밀치는 것처럼 말이죠.

 


 

 당연히 면접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 맞습니다. 경쟁자보다 자신을 더 어필해야 합니다. 뽑히는 인원과 떨어지는 인원이 정해져 있다면, 경쟁은 필연적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모습을 처음 맞이한 저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대한 겸손하게 저를 어필하려 했던 생각은 제 입을 굳게 닫아버렸습니다. 그렇게 저는 떨어졌습니다. 면접관들은 제가 가진 역량을 알 수 없었습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그 면접을 통해 저는 깨달았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절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것을요.

 

 그리고 지난 상반기, 저는 달라졌습니다. 많은 다짐을 했고, 많은 준비를 했습니다. 면접관들 앞에서 당황하지 않고 제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렇기에 결과는 좋았습니다. 그렇게 쭉쭉 올라갈 것 같았습니다. 드디어 저도 취업을 하는가 싶었습니다. 그러나 혼자가 아닌 면접장에서 저는 예전과는 다른 불편한 기분에 둘러쌓였습니다.

 


 

 취업이라는 것이 하나의 피라미드를 오르는 것이라면, 그 꼭대기에 오를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일 것입니다. 출발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함께 도전하며, 같이 잘 해보자는 이야기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르면 오를수록 좁아져만 가는 피라미드의 특성상 우리는 경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심지어 우리가 아무리 남들을 억지로 밀고, 걷어차지 않아도 누군가는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오르고자 발버둥 치는 우리의 몸짓 때문에 말이죠.

 

 말 그대로 저는 발버둥 쳤습니다. 올라가고 싶어서 열심히 했습니다. 절대 남을 비방하거나 깎아내리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선의의 발버둥에, 그 의도치 않은 몸짓에, 누군가는 우연히 얻어맞아 저 아래로 곤두박질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너무 가혹했습니다. 옆 사람의 발버둥에 내가 맞아서 떨어질 때는 단지 그런 생각만 했습니다. 내가 많이 부족했구나, 다음에는 조금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다. 그러나 발버둥을 치는 사람이 제가 되었을 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올라가기 위해서 이 사람들을 떨어뜨려야 되는구나. 그렇지 않으면 내가 굴러 떨어지는구나.

 

 면접을 같이 본 친구와 회사를 나오면서 서로를 위로했습니다. “괜찮아, 잘 했어. 면접 결과는 정말 아무도 몰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말자.” 아니요. 저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 말은 본심이 아니었습니다. 저는 발버둥을 치느라 친구들을 상처 주었습니다. 그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습니다. 속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달랐습니다. “미안하다. 내가 너무 잘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너희들의 기회를 빼앗은 것 같아.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

 


 

우리는 언제까지 경쟁을 해야 할까요?

 

 자원은 유한합니다. 따라서 그 자원을 가질 수 있는 사람 또한 유한합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경쟁은 일어납니다. 취업시장에서의 경쟁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의자놀이에 누군가는 상처를 받고, 누군가는 쓰러집니다. 결국 의자에 앉은 사람도 다른 사람을 밀어내고 앉았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정말 불편합니다. 살고자 하는 제 발버둥이 누군가를 상처 준다는 것이 너무 싫습니다.

 

 침묵하고 있는 나도 부끄럽고, 술에 취한 나도 부끄럽고, 차를 마시는 나도 부끄럽고, 좋은 시인을 도와주지 못하는 나도 부끄럽고, 일본으로 유학 가라고 권하는 나도 부끄럽네. 부끄럽지 않게 사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이겠나?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워할 일이 아니네. 부끄러움을 외면하는 게 부끄러운 일이지.

-영화  '동주' 中

 

 영화 동주에 나오는 정지용 시인의 대사입니다. 제가 사랑하는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입니다. 동주의 삶을 통해 마치 우리네 삶을 보여주는 것 같기 때문이죠. 힘든 시대에 태어나 시를 쓰고 있는 자신의 삶을 부끄러워하던 동주에게, 정지용 시인은 위와 같은 말을 해줍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제가 가진 고민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삶을 살아가며 경쟁을 피하기만 할 수는 없는 것 같습니다. 자원도, 자리도 유한하기 때문이죠. 어쩔 수 없이 우리는 평생 동안 경쟁의 굴레 속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며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기에 남들과의 비교에서 때로는 앞서고, 때로는 뒤쳐질 것입니다. 다만 악의적으로 남들을 짓밟고 깎아내리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또한 그 자리와 자원을 가지게 된 것에 대한 미안함으로, 조금이나마 부끄러운 마음을 덜어내며 살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경쟁이 끝나는 날이 오겠지요? 그 날까지 저도, 여러분도 경쟁이라는 괴물과 싸우면서 스스로 괴물이 되어있지 않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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