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학창 시절의 모든 것이었던 그 시험
2008년 11월 13일, 매년 그렇듯이 이른 아침부터 매서운 칼바람이 불었습니다. 길게 보면 12년, 짧게 보면 1년 동안 밤 잠 줄여가며 노력한 결과를 받아 드는 시간이었습니다. 생전 처음 가보는 학교에서,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들과 함께 시험지를 받아 들었습니다. 그리곤 모두 일사불란하게 문제를 풀어내려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꿈꿨던 보상은 쉽게 주어지진 않았습니다. 해가 다 져서야 저는 시험장을 빠져나왔고, 기다리고 계시던 부모님의 차에 몸을 실었습니다. 고생했다는 부모님의 위로에 저는 긴장이 풀리듯 몸이 스르르 녹아내렸습니다. 그러나 이내 끝났다는 홀가분한 마음보다는 더 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부모님께는 차마 털어놓지 못한 '재수'라는 단어가 입 안에서 계속 맴돌았습니다.
그것이 벌써 8년 전의 일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습니다. 그 당시의 저는 수능이라는 시험이 제 평생을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관문이라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1년을 하루 4시간만 자며, 매일 아침 코피를 쏟을 정도로 건강을 잃어가면서도 공부를 했습니다. 남들보다 늦게 시작한 것을 따라잡으려 최선을 다했고, 높은 꿈을 꾸었습니다. 그 당시의 수능은 제게, 아니 모든 제 또래 친구들에게 그런 의미였기 때문에, 저를 포함한 많은 친구들이 그 결과에 따라 무너지고 좌절했습니다.
그리고 2016년 11월 18일, 어김없이 쌀쌀한 바람이 부는 날씨에 저는 정장을 입고 서울로 향했습니다. 우연찮게도 수능을 보는 날에 올 하반기의 마지막이 될 면접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와 같이 시험을 보게 될 수험생들의 마음이 피부로 전해졌습니다. 많이들 긴장하고 많이들 염원했을 것입니다. 저 또한 같은 마음으로 마지막 면접을 보았습니다.
스스로 만족하는 시험이 되도록
그러나 항상 면접이라는 것은 결과를 전혀 예측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합격을 위해 발버둥 치겠다는 생각보다는, 스스로 만족하는 면접을 하자는 생각으로 자리에 임했습니다. 그 전의 면접들에서 다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준비해 갔던 말들을 하나 둘 풀어냈습니다. 물론 아쉬움도 많았습니다. 적지 않은 돌발 질문에 논리가 부족한 생각을 전하기도 하였고, 사소한 행동과 태도에 대한 실수도 물론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더 이상 그런 것들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8년 전의 걱정이 지금에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지금 이 면접에 대한 걱정도, 취업에 대한 걱정도, 수년 후에는 아무것도 아닌 추억거리가 될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8년 전에 제 삶의 가장 큰 짐이자 걱정거리였던 수능이,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단지 하나의 사건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저를 정말 놀라게 만듭니다. 게다가 저는 그 수능이 제 인생을 크게 결정지었다고 보지도 않습니다. 물론 시험의 결과에 따라서 저의 진로나 주변 사람들이 달라졌을 수는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는 제 삶에 대한 태도나 자세마저 달라졌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삶이 주어졌든 간에 나라는 사람은 그 삶에 똑같이 존재했을 것이니까요. 그래서인지 저는 살아보지 않은 그 삶들이 전혀 궁금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삶을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가느냐 이니까요.
좋은 선택보다는, 좋은 태도로
'B(Birth)와 D(Death) 사이에는 C(Choice)가 있다'는 말처럼, 우리 삶에서 선택이라는 것은 정말 중요한 요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선택에 대하여 많은 고민과 걱정을 합니다. 그 선택이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렇다 보니 최선의 선택을 위한 최선의 노력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마치 수능을 위해서, 취업을 위해서, 잠을 줄여가며 노력하는 것처럼 말이죠.
그러나 선택이라는 것이 언제나 최고의 결과만을 가져다 주지는 않습니다. 게다가 그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는지, 그른 선택이었는지를 결정하는 것도 생각과 기준에 따라 달라지곤 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히려 어떤 선택을 하느냐 보다는, 선택 후에 어떤 태도와 자세를 가지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 태도와 자세로부터 우리가 얻는 것들이 곧 우리의 삶을 결정짓는다고 보는 것이죠. 잘못된 선택과 아쉬움이 남는 선택에 대해 계속 후회하고 자책하기만 한다면, 우리의 삶은 그다지 밝은 방향으로만 흘러가지는 않을 것 같아요. 어떤 선택을 했든 간에 스스로를 칭찬해주고 응원해주고 위로해준다면 우리는 조금 더 행복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 같아요.
우리 모두 더할 나위 없었다!
그래서 저는 우리 모두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수년간 마음 졸이며 고생했을 수험생과 취준생들을 비롯하여, 그 가족들, 친구들, 선생님들, 주변의 모든 사람들에게 정말 고생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긴 시간 정말 힘들게 달려왔고, 많은 마음고생이 있었지만, 지금의 이 모든 걱정과 스트레스는 몇 년 뒤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있을 거라고요. 매번 더 잘하지 못한 아쉬움에, 원하는 것을 얻어내지 못한 좌절감에 점점 우리는 자존감을 잃어가겠지만, 우리 모두 각자 다른 시간을 지나고 있을 뿐 잘 살아가고 있다고요.
그러니 다들 거울을 보며 자신에게 한 번씩 말해주세요. 나, 더할 나위 없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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