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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요즘 OO 해!

 

 지난달 즈음에 살 것이 있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아는 동생을 만났습니다. 함께 인턴을 했었고, 지금은 어엿한 직장인으로서 잘 살고 있는 동생이었습니다. 넓디넓은 도시에서 우연히 마주친 것이 신기하여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함께 했었던 다른 친구들이 생각났습니다. 여름이 지나면서 우리는 갈라졌지만, 서로 약속했듯이 자주 안부를 물었었습니다. 그러나 해가 지나가면서는 자연스럽게 연락이 뜸해졌고, 어느덧 반년이 훌쩍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모든 친구들이 각자 자기만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 길이 자신이 가고자 했던 길이든, 가고자 하지 않았던 길이든지 말이죠.

 

 우연히 만난 동생을 보내고서 저는 가장 먼저 가슴속에 떠오른 인턴 동기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같은 부문에서 인턴을 했고, 같이 전환이 되지 않아서 힘든 시간을 함께 견디었던 동생이었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능력 있고 착하고 에너지 넘쳤던 동생이지만, 길고 긴 취업 전쟁에 지쳐서 많이 힘들어했던 친구였습니다. 꽤나 긴 시간 뒤에 답장이 와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동생은 제가 먼저 꺼내지 못한 말을 먼저 해주었습니다.

 

 "나 요즘 공부해! 시험 보려고!"

 

 제가 졸업한 신문방송학과는 거의 모든 수업이 발표, 또 발표의 연속이었습니다. 수업 하나에 발표 한 개는 기본이었고, 심하면 최대 세네 개 까지 있을 정도였으니까요. 고학년일지라도 결코 예외는 없었습니다. 이상하게도, 한 학기 동안 수많은 발표를 진행하면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발표가 하나씩은 꼭 있었습니다. 일곱 번째 학기의 그 발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수업에는 발표가 무려 세 개나 있었는데, 그중 하나는 수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주제에 대한 발표였습니다. 발표 주제는 "아무거나". 그때 한창 "세바시",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 빠져 계셨던 교수님은 우리들에게 15분 동안 아무런 주제나 발표를 해보라고 하셨습니다. 수업과 아무런 관련도 없는 발표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불평불만이 아주 거셌지만, 사실 저는 그렇게 불만이지는 않았습니다. 워낙에 남들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고, 자유주제로 발표할 수 있는 기회가 흔치는 않았기 때문이죠. 사람들 앞에서 무슨 이야기를 할까 고민하다가, 흔한 이야기를 흔하지 않게 해보기로 했습니다. 바로 제가 좋아하는 여행 이야기를 말이죠.

 

열아홉 살의 내가 가고 싶었던 길

 저는 사실 드라마 피디가 되고 싶어서 신문방송학과로 진학했습니다. 원래는 기자가 되고 싶어서 신문방송학도를 꿈꿨지만, 고삼이 되자마자 드라마 피디로 꿈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이유는 딱히 없었습니다. 그 일을 경험해보지 않았으니 그랬을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단지 좀 더 멋있어 보였고, 좀 더 재밌어 보였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토대가 약한 꿈이어도 어쨌든 꿈은 꿈이었고, 그마저도 없는 다른 친구들과는 다르게 저는 결국 목표하던 학과에 진학했습니다. 동경하던 학과에 진학하여 멋진 인생을 꿈꿨지만, 그 노력이 우습게도 저는 언론고시 한 번 봐 보지 않고서 그 꿈을 포기했습니다. 막상 가까이에서 지켜본 드라마 피디는 제가 꿈꾸던 모습과는 꽤나 많이 달랐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설사 그 모습이 비슷했다고 하더라도 지상파 드라마 피디가 되기란 하늘에 별따기와 같았습니다.

 

 그렇게 드라마 피디라는 꿈을 버리고 새롭게 가진 꿈은 광고 기획자였습니다. 우연히 들은 광고학 수업에서 팀원들과 함께 광고를 처음 접했고, 그것에 흥미가 붙어 갖게 된 꿈이었습니다. 대학생활을 하며 많은 공모전을 참여하고, 대외활동도 할 정도로 꿈을 키워갔지만 생각했던 대로 꿈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광고를 공부하다가 마케팅에 관심을 갖게 되어서 마케팅 기획자로 방향을 틀게 되었고, 마케팅을 공부하다가 현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어서 영업 쪽으로 또 방향을 틀었기 때문입니다. 근 십여 년을 살아오면서 저는 사실 제가 가고 싶었던 길을 걸었다기보다는 그때그때 가고 싶은 길을 걸어왔습니다. 전에 가고자 했던 방향은 주저 없이 등지면서 말이죠.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
그 상자 안에 무엇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른다.

 

 저는 여행가는 아니지만, 또래 친구들 축에서는 나름대로 여행을 많이 다녀본 편입니다. 그 많은 여행들은 각각 다른 방식으로 다녀온 여행들이었습니다. 한 번은 가이드와 함께 유명한 곳을 속성으로 돌아보는 여행이었고, 또 한 번은 자유여행으로 유명한 랜드마크를 찍고 다니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리고 몇 번은 아무런 계획 없이 발길 닫는 대로 걷는 여행이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방식의 여행을 다니면서 저는 나름대로 저에게 가장 어울리는 여행 방식을 찾았습니다. 그것은 가이드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도 아니고, 유명하다는 곳만 찾아다니는 여행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방향만 정해놓고서 순간순간에 가고 싶은 곳으로 몸을 옮기는 것, 계획한 대로 여행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우연히 마주치는 것들에 대해 행복해하는 그런 여행이었습니다. 그 발길 하나하나에 찾아오는 인연들과 이야기들이 여행의 여백을 채워주었습니다.

 

에펠탑 보고 왔어?!

 

 사실 우리는 여행의 즐거움이 어디에 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에펠탑에 가면 정말 그 여행이 값진 여행이 될지, 프라하 성에 가서 가이드에게 체코의 역사를 배우면 그 여행이 값진 여행이 될지, 아니면 발길 닫는 대로 걷다가 마음에 꼭 드는 장소를 만나면 그 여행이 값진 여행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꿈꿨던 그 길 위에 우리의 행복이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어느 길 위에 우리의 행복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제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았어도 제 스스로를 불행하거나 안타깝게 보지 않습니다. 드라마 피디가 되었다면 나름대로 행복한 삶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광고 기획자가 되었어도 마찬가지였겠죠. 그러나 그 길들을 가지 못했다고 해서 불행하거나 슬프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 제가 걷는 이 길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길 위에는 각각의 행복이 있을 테니까요. 

 

계획한 대로 삶이 흘러가진 않더라도,
그래도 괜찮아.

 당시의 발표는 준비한 것에 비해 꽤나 허무하게 끝이 났고 반응도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발표를 했던 제 자신만큼은 아직도 그 발표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때 했던 생각과 그때 말했던 이야기들이 다시 제게로 다가와서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긴 대학생활과 취업준비기간을 지나오면서 제가 꿈꿨던 길과 방향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나 저는 괜찮습니다. 저는 잘 살고 있습니다. 그때그때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제 삶을 조금씩 채워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여행 같은 삶을 살아가고 있고, 계속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럴 것입니다. 모두가 자신의 길을 걷기 위해 열심히 걷고 있을 겁니다. 저도, 여러분도, 새롭게 공부를 시작한 그 동생도 그럴 것입니다. 때로는 그 노력이 우리를 배반하여 그 길을 갈 수 없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흔치 않게 선택받은 몇몇의 사람들만이 자신이 바라는 길 위를 걸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길을 향하든, 그것이 애초에 계획했던 자신의 삶이든 그렇지 않든, 저는 괜찮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괜찮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자신이 할 수 있는 것, 그리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것이 진정 자신을 위한 길임에는 틀림이 없으니까요. 그러니 삶이 계획대로 흘러가진 않더라도, 너무 괴로워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부디 아무도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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