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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에 대학으로 돌아온 선배

 한창 대학을 즐기고 있을 때 만났던 고학번 선배가 있었습니다. 저보다 무려 7~8학번이나 높았으니 까마득한 선배였었죠. 그때 제가 아마도 스물세네 살 즈음이었으니, 그 선배는 서른을 갓 넘긴 나이였을 겁니다. 학부생으로선 꽤나 많은 나이죠. 그래서 많이 궁금했습니다. 무슨 연유로 나와 같이 학교를 다니고 있는 건지요. 우연찮게도 같은 수업을 듣고 같은 조가 되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 선배가 적지 않은 나이로 다시 학교에 돌아온 이유를 직접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선배는 졸업을 하기도 전에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공기업에 자랑스럽게 합격했었더랬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근무를 하다가,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 그 회사를 다니는 상사들이 눈에 보이더랍니다. 자신보다 10년, 15년을 더 많이 다닌 상사들. 그분들이 하는 일이라고는 하루 종일 의자에 앉아 시간을 죽이다가 나가서 전단지를 돌리는 그런 일상이었다고 했습니다.

 

그건 내가 원하던 삶이 아니더라고

 사실 그런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긍정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겁니다. 안정적이고, 스트레스받지 않는 평온한 일상. 그리고 남모를 사정이 있을 수도 있고요. 저도 직접 보지는 않았으니까요. 그런데 그런 모습이 그 선배를 많이 흔들어 놓았다고 했습니다. 그 선배는 나이가 먹어도 자신의 일에 전문적이고 열정적인 그런 삶을 살고 싶어 했습니다. 결국 그 선배는 그렇게 회사를 박차고 나와서 다시 학교로 돌아왔습니다. 십 년, 십오 년 후의 자신의 모습이 그 상사들처럼 되는 게 견딜 수 없었던 것이겠죠. 

 

 

 우리 또래들, 아니 우리들 뿐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질문을 되뇌며 살아갈 겁니다.

 

 나 잘 가고 있는 걸까?

 

 우리 부모님 세대도 그렇고, 우리도 그렇고, 우리 다음 세대들도 똑같을 겁니다. 힘든 시기에 태어나서 정신없이 살아왔고, 그저 자식들 무럭무럭 자라는 맛에 힘을 내며 달려오셨던 부모님들. 좋은 시대에 태어나 하라는 대로 공부하고 가라는 대로 대학 가서 열심히 스펙 쌓고 있는 우리들. 뒤쳐지기 싫은 부모님 등살에, 태어날 때부터 조기교육에 하루 왠종일을 학원에서 보내는 아이들. 항상 그렇지만 우리는 고민하지 않는 삶을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습니다. 빨리빨리가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이듯이, 우리의 인생도 빠르게 빠르게 선택하고 또 흘러갑니다.

 

 우리도 그랬잖아요. 사실 무엇을 하고 싶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보다는, 어떤 대학을 가고 싶고 어떤 학과를 가느냐가 더 중요했었죠. 막상 대학에 들어가니 이 전공이 나한테 맞는지 아닌지 의문이 들어요. 그런데 답을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다른 것들을 많이 경험해보지도 않았고, 경험해도 딱 자신에게 맞는 길을 찾기란 쉽지가 않거든요. 투표는 사실 최악을 걸러내는 과정이라곤 하지만, 우리의 삶은 최고의 선택을 하고 싶잖아요. 딱 한번 사는 것이니까요.

 

아니, 잘 모르겠어.

 

 그래서인가 봅니다. 모두 결국에는 멈춰 서더라고요. 자신이 한 선택이 잘한 선택인지 아닌지, 문득 멈춰 서서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아니 사실 오롯이 자신만의 선택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게 현실이기도 합니다. 그것 때문에 선택에 대한 확신이 들지 않는 것이기도 하고요. 우리들의 선택은 사실 주변 사람들의 눈치와 주변 세상의 눈치들이 마구 섞인 결과물이잖아요. 그 사이에서 끝없이 줄타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근데 중요한 건요. 그런 고민이 끝없이 지속되더라는 거예요. 고민은 다 똑같이 하더라고요. 잘 가고 있는지 아닌지에 대해서요. 취준을 하는 후배와 동기들도, 회사를 이미 다니고 있는 선배들도, 심지어 은퇴를 하신 우리 아버지도 말이에요. 내가 들어가고 싶었던 대학, 전공, 회사들이 생각했던 것과 다를 수가 있어요. 그때 부딪히는 벽은 생각보다 높고 단단하더라고요. 또 우리의 삶은 매 순간순간 변하고, 그에 따라 삶에 대한 시선도 생각도 변해요. 원하는 것들이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먼저 변했을 수도 있어요. 결국 고민은 항상 이어지더라는 거죠.

 

 

 그래서 저는 멈춰 서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시간낭비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그 고민을 대학생 때 하든, 취준생 때 하든, 직장인이 되어서 하든, 그 시기 또한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자신이 원하는 방향을 찾아가느냐가 중요한 거죠.

 

 또한 그러한 시간을 자신에게 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칭찬받아 마땅한 거예요. 자기 자신을 사랑한다는 증명이기 때문이니까요. 오롯이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시간, 그 소중한 기회를 자신에게 주는 것이잖아요.

 

인생은 경주가 아니잖아.

 

 자신이 지금 멈춰있다고 해서 신나게 달려가는 남들과 비교하며 스스로를 재촉하지 말아요. 굳이 그러면서 스스로를 아프게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그 멈춰 있음이 곧 더 나은 삶을 위한 과정이고, 그러한 고민은 지금뿐만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계속될 거예요. 천천히 가더라도 방향에 확신이 있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당당하고 거침없이 걸어갈 수 있어요. 지금 멈춰 있는 이 시간들이 켜켜이 쌓여 자신에 대한 확신과 행복으로 돌아올 거라고 저는 확신해요.

 

 

 몇 년 뒤 그 선배는 결국 대학원에 진학해서 사회에서 인정받으며 평생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더군요.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요? 공기업에 합격하여 평생을 걱정 없이 살 것이라고 생각되던 그 선배가, 다시 학교로 돌아와 대학원에 가리라곤 말이에요. 주변 사람들보다는 꽤나 늦은 출발일 거예요. 그렇지만 적어도 몇 년 전의 그 선배보다는 지금의 그 선배가 훨씬 더 행복할 것이라고 조심스레 생각해요.

 

자기 자신을 위한 소중한 시간이에요.

 

 지금 우리가 멈춰 서 있는 것은 빠르게 지나가는 세상 속에서 무언가를 잃지 않기 위함이라고 생각해요. 그 무언가는 자기 자신이라고 저는 생각하고요. 그러니 나쁜 게 아니에요. 멈춰 있는 거요. 천천히 가도 좋으니, 자신이 진정 원하는 방향으로 가요. 중요한 건 자기 자신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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