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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채용 시스템은 지극히 문제가 많다’

 라고 말한다면 수많은 취업준비생들에게는 다소 마음의 위안이 될지도 모르겠다. 실제 취업준비생들과 상담을 해보면 짧은 시간의 면접이나 몇 장의 자기소개서만으로 사람을 어떻게 판단하느냐는 이야기를 많이 듣게 된다. 지극히 자연스러운 주장이고 타당한 의견이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기에 한국의 조직에서 일반적으로 이루어지는 채용 시스템은 합리적인 편이다. 사실 사람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어느 정도의 시간 동안 함께 일도 하고 생활도 해 봐야 특정한 사람이 특정한 조직에 적합한지를 판단해볼 수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조직이 누군가를 채용하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사실 새로운 사람을 받아들이는 채용은 조직의 입장에서는 매우 중요하지만 표면적으로 결과의 좋고 나쁨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경우 채용의 나쁜 결과는 빨리 드러나고 좋은 결과는 늦게 드러난다. 조직에 새로 들어온 사람이 조직의 부정적인 변화나 영향을 가져오는 일은 금세 나타나지만, 긍정적인 변화나 영향은 빠르게 나타나지 않는다.     

 

 현재 많은 수의 한국 대기업에서는 대규모 공채(공개채용)를 실시한다. 많은 사람들이 수능시험을 보듯 자기소개서를 작성해 원서를 내고, 그중 일부가 인적성 검사와 같은 것을 치르고, 다시 그중 일부가 몇 차례의 면접을 거친다. 이러한 과정에서는 해당 기업이 원하는 사람이 선발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인재풀을 만들어서 상시 채용을 진행하는 것 또한 기업 입장에서는 쉬운 선택이 아니다. 지원자에게 면접이나 자기소개서는 부담과 긴장으로 다가오겠지만, 기업에게는 비용으로 인식된다. 사실 기업은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고 싶어 한다. 상시 채용으로 뽑힌 사람이 공채로 뽑힌 사람보다 반드시 뛰어나다고 단언할 수 없고, 비용 차이가 압도적이라면 지금 기업의 선택은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다.     

 

 사실 채용의 방식은 규정할 수 없다. 조직이 처하는 환경이 변화하고 사람이 계속 변화하기 때문에 어떠한 방식이 정답이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오답이다. 결국 다양한 방법을 실험하는 것이 조직에서의 채용에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단 여기에도 전제조건은 있다. 무엇에 초점을 두고 채용을 진행해야 하는가이다.      

 

 조직에서는 새로운 사람을 채용할 때 기본적으로 ‘잘 하고 잘 맞는 사람’을 뽑으려고 한다. ‘잘 한다’는 것은 능력이 뛰어난 사람을 의미하고 ‘잘 맞는다’는 것은 조직에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것을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자기소개서를 평가하거나 지원자에 대해 면접을 보는 담당자에게 주어지는 대부분의 평가기준은 추상적이다. 그런데 그러한 추상적 기준은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특정한 질문에 어떤 문장을 말하거나 썼다고 해서 몇 점이라는 식의 평가는 누가 보아도 적절하지 않은 평가 방식이다.      

 

 

 결국 그러한 평가기준은 조직이 추구하는 가치나 필요 능력에 관한 여러 사람들의 종합된 의견으로 정리되어야 한다. 반드시 숫자나 명확한 단어로 표시되지 않더라도, 사람들의 충분한 논의와 토론이 이루어진다면, 사람들의 머릿속에 채용을 위한 평가기준은 불문율처럼 존재할 수 있다.     

 

 물론 그러한 평가기준의 근간이 되는 가치나 필요 능력의 상당수는 많은 기업에서 가치와 미션과 같은 이름으로 이미 정의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가치에 대해서 한국 조직 내의 구성원들이 어느 정도로 공감하고 신념화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채용은 부정적인 영향은 빨리 드러나고 긍정적인 영향은 늦게 드러나기 때문에 실무를 진행하는 담당자의 입장에서도 리스크를 최소화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게다가 조직의 입장에서 채용은 결과를 쉽게 번복할 수도 없는 행동이다. 채용 담당자는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싶어 할 수 있겠지만, 시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면 그 선택은 쉽지 않을 것이다.      

 

 특이하게도 상당수의 채용은 트렌드를 많이 따라간다. 선도적인 기업들이 특정한 평가항목이나 방식을 채택하면, 유행을 따르는 것처럼 많은 기업들이 그러한 방법을 채택한다. 덕분에 시험이 없어졌다가 부활하기도 하고, 때 아닌 인문학 열풍에 인문학 관련 서적을 취업준비생들이 필독서처럼 읽기도 한다.      

 

 사실 이러한 경향성은 다양한 방식을 시도할 수밖에 없는 채용이라는 행위의 측면에서 한편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만큼 다른 조직들과 다른 시도를 하는 것에 대한 리스크를 감당하고 싶어 하지 않으려는 성향 또한 내포되어 있다. 문제는 트렌드를 쫓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내부적, 암묵적으로 가지고 있는 채용의 기준을 구현하는 것에 새로운 유행이 적합한지의 여부이다. 재미있는 것은 트렌드를 선도하는 기업들은 많은 사람들이 선망하는 기업들이고, 그러한 기업들이 채용 방식을 변화시키는 것은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는 이유도 있지만 특정한 방식에 사람들이 적응하는 것을 막기 위함도 있다는 것이다.     

 

 채용의 규모가 대규모이든 소규모이든 채용은 담당자 혼자가 아닌 다양한 조직 내의 사람이 얽혀 진행할 수밖에 없다. 인사담당자가 아니어도 조직 내의 누군가는 면접관이 될 수도 있고, 함께 일할 사람을 뽑는 것과 관련해 핵심적인 기준과 의견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 과정이 사실 조직 내의 특정한 누군가에게만 국한되기는 어렵다. 채용의 규모가 대규모이면 많은 사람이 필요하고 소규모일 경우에도 인력의 충원은 다양한 부서와 직무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결국 표면화하기 어려운 묵시적 기준 즉 조직의 인재상에 대한 치열한 논의와 고민이 조직 내부의 사람들 사이에서 필요하다. 한국의 조직에서 채용에 있어 그러한 고민이 이루어지는 곳이 얼마나 있을까? 사실 여럿이 고민하지 않아도 채용은 이루어져 왔고 한국의 상당수 기업들은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단지 미래 성장 동력이 없다는 우려만 넘쳐날 뿐이다.      

 

 채용의 기준과 같은 본질적인 이야기뿐만 아니라 채용 방식에서도 새로운 시도들은 가능하다. 흔히 이루어지는 면접은 1명의 지원자를 대상으로 3명 정도의 면접관이 질문을 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간혹 여러 명의 지원자가 토론을 하고 여러 명의 면접관이 관찰을 해서 평가를 하는 면접도 이루어진다. 이러한 면접은 기본적으로 지원자가 ‘을’이고 면접관이 ‘갑’인 방식이다.     

 

 면접이라는 행위 자체가 구조적으로 면접관이 지원자에 대비해서 ‘갑’인 위치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굳이 그러한 상황을 명확하게 인식시켜 주는 면접이 채용에 정말 도움이 되는 것일까? 역발상으로 1명의 면접관에게 여러 명의 지원자가 질문을 하는 방식은 어떨까? 한국의 교육을 비롯해 모든 평가는 좋은 대답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렇다 보니 상당수의 사람들은 정답을 본능적으로 찾고 있으며 심지어 정답이 없는 것에도 정답이 있다는 접근을 하고 있다. 어떠한 상황에 대해 우리는 본능적으로 정답을 찾지만, 사실 중요한 것은 질문일지 모른다. 계속된 질문이 상황에 대한 정교한 인식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을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론 이러한 방식의 면접은 면접관에게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면접관이 ‘갑’의 입장이라고 해도, 여러 명에게 질문을 받고 대답을 한다는 것은 부담이다. 그리고 질문을 하는 지원자도 그러한 구조적인 상황을 인지하고 면접관에게 가려서 질문을 할 수도 있다. 

 

 그러나 좋은 질문을 할 수 있는지의 여부 그리고 대답을 경청하는 지원자의 태도를 확인할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이러한 방법은 시도해 볼만한 방법이다. 하지만 누군가의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권력을 가진 입장에서, 그에 반하는 행동을 의도적으로 경험하게 하는 상황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직 내에서 창의적이라고 채택되는 아이디어의 상당수가 상급자의 것인 것처럼 말이다.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 발전 가능성이 높은 사람, 조직문화에 잘 적응할 사람, 조직문화를 긍정적으로 변화시킬 사람은 사실 모든 조직이 원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을 채용하기 위해 학력과 경력이 요약해서 담긴 이력서 아니라 자기소개서도 쓰게 하고 면접도 본다. 그러나 채용을 담당하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한국의 조직은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생각만큼 채용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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