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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와 부하 사이의 스스럼없는 소통, 일방적 지시보다는 토론을 통한 공동의 의사결정 등 이른바 '수평적 조직문화'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각종 매체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평적 조직문화의 사례들을 보도하기 일쑤이며, 혁신과 성장을 위해서는 수평적 조직문화가 반드시 필요한 것인 양 다루어지고 있다. 

 

그에 더하여 지금 우리 주변에 만연한 권위주의적이고 수직적인 조직문화로는 앞으로 발전을 이룩할 수 없을 것이라는 견해 또한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덕분에 한국의 대기업들에서도 수직적 조직문화를 타파하고 수평적 조직문화를 도입하기 위한 시도가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구체적 사례들을 제시하지 않더라도 직급 체계의 단순화, 조직 내 호칭의 개편 등은 흔하게 확인할 수 있는 이른바 '수평적 조직문화'를 갖추기 위한 시도들이다. 

 

그런데 수평적 조직문화는 정말 다가올 미래 시대에 꼭 필요한 아니면 더 나아가 지금 상당수의 조직이 가지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만능열쇠일까? 만일 그러한 방식으로 수평적 조직문화를 이해한다면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왜냐 하면 조직문화에 정답이라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조직문화는 조직이 무엇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목표가 무엇이며 어떤 환경에 처해 있느냐 등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확인할 수 있는 조직문화의 대다수가 권위주의적이며 수직적이라는 부분은 부정할 수 없지만, 그에 대한 대안이 무조건 수평적 조직문화일 수는 없다. 

 

대표적인 예로 군대를 들 수 있다. 지극히 수직적인 조직문화의 군대에 일부 수평적인 취지의 조치들을 도입할 수 있겠지만, 본질적으로 군대라는 조직에 상명하복이라는 가치가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치열한 전투의 상황에서 개인만이 아니라 해당 개인이 소속된 부대 전체의 생존을 위해서 정해진 규율을 준수하고 상급자의 지침을 따라야 하는 것은, 군대라는 조직의 목적과 목표를 감안한다면 당연한 것이다.

 

사실 개별 조직들의 상황이 모두 군대와 같을 수는 없겠지만 모든 부분에서 군대와 다르다고 할 수도 없다. 위로부터의 지시에 일사불란하게 반응하는 것과 자율적인 분위기 하에서 개별적 창의성을 극대화하는 것은 상황에 따라 중요도가 달라지는 것이지 어느 한쪽이 우위에 있다고 잘라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조직이 어떠한 상황에 처해있으며 어떠한 목표를 가지고 있느냐가 이른바 '좋은' 조직문화가 무엇인지를 정의할 수 있게 만드는 핵심인 것이다. 만일 리더가 전지전능에 가까운 능력자라서 리더의 판단을 전적으로 신뢰해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현재 조직의 목표 달성을 위해 최적의 방법이라면, '좋은' 조직문화는 수직적 효율성이 강조되는 조직문화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조직의 목표와 방향 그리고 이를 실행하기 위한 방안이 꽤나 구체화되어 있는 곳이라면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효율성 측면에서 매우 유리할 수 있다. 수직적인 조직문화는 조직을 빠른 속도로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하는데 강점이 있다. 

 

그런 점에서 지금 한국 경제력의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재벌들에 상명하복을 핵심으로 하는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형성된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재벌이라 불리는 기업들의 초창기 사업모델은 기존 분야의 선도자들을 모방하며 빠르게 따라가는 이른바 'Fast Follower' 전략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상명하복을 원칙으로 하는 조직문화는 어떻게 보면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이다. 성장 초기 재벌의 '빠르게 따라 하기' 전략은 선도자보다 품질은 떨어져도 가격은 저렴한 이른바 가성비의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었기에 어느 정도 성공할 수 있었지만, 현재 상황은 그때와는 다르다. 한국은 주된 산업 분야에서 선도자가 되어 버렸으며 그것도 중국에 매우 쫓기는 신세가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사실 선도자가 계속적으로 지배적인 위치에 남으려면 '혁신'이라 일컬어지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기존의 수직적 조직문화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데 적합한 것일까?

 

'혁신'이라 불릴 만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할까? 놀라울 정도로 창의적인 리더가 존재해 조직의 구성원들에게 쉴 새 없이 지시를 쏟아내는 것일까? 아니면 리더가 부하직원들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몇 개씩 내놓으라고 할당량을 부여한 다음 이건 이래서 안 되고 저건 저래서 문제라고 지적하며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찾아내는 것일까? 

 

사실 모두가 알고 있다. 이런 식으로는 혁신이라 불릴만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사실 '혁신'이라 불릴 수 있는 새로운 것이 등장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수의 실패와 그 보다 더 엄청난 숫자의 말도 안 되는 아이디어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이러한 것은 수직적인 조직문화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상명하복이라는 수직적인 조직문화에서 하급자에게 요구되는 중요한 덕목은 신속한 보고다. 부하 직원은 변화되는 상황을 신속하게 리더에게 보고하고 리더는 판단을 하는 것이다. 판단에 관한 부하의 생각은 잘해야 참고의견이다. 

 

그러나 지금은 어마어마한 속도로 변화하고 있다.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것들이 기존과는 다르게 연결되고 있다. 예전에는 아무런 관련 없어 보이는 것들도 이제는 아무렇지 않게 연계되어 이해되고, 새로운 연결은 하루가 아니라 분초를 다투며 등장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변화의 속도를 감당하기에 리더 한 명의 탁월함으로 충분할까? 물론 그중에는 천재도 존재하니 아예 없다고는 못하겠다. 그런데 이미 상당수의 리더들은 느끼고 있다. 예전의 리더들이 자신의 분야에 대해 A부터 Z까지 꿰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했다면 이제는 그러지 못한다는 것을, 아니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그런 점에서 조직의 판단이 리더에게 독점되어서는 곤란하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조직문화가 그러한 것을 용납하고 있는가? 게다가 창의적인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조직의 소망이 아니라 생존 목표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리더 혼자만의 발버둥으로 그러한 것이 가능할까? 기본적으로 창의성이라는 것은 실패에 대한 관대한 용인뿐만 아니라 마음껏 뻘소리를 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고 그 속에서 여러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떠들 수 있어야 발현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상명하복의 분위기에서 그러한 것이 잘 될까?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 글의 제목과는 다르게 결국 수평적인 조직문화가 정답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산업별, 분야별 그리고 상황에 따라 바람직한 조직문화는 다를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조직문화에 정답이 없다는 것이다. 조직이 어떠한가에 따라 바람직한 조직문화의 상은 달라야 한다. 조직의 목표와 목적, 구성원, 처해 있는 환경 등은 제각각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특정한 조직문화가 정답인 것처럼 생각하고 이를 위한 조치들을 별 문제의식 없이 도입하는 것은 조직을 망치는 일이다. 따라서 조직의 목표와 상황, 구성원에 대해 충분히 고민한 이후 조직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한 시도들을 시작해야 한다. 하지만 많은 경우 조직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한 시도는 느닷없이 이루어지는 경우들이 많다. 왜냐 하면 조직문화의 변화는 리더들의 느닷없는 지시로 추진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도가 무조건 나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리더는 조직의 운영에 관심이 많고 조직의 발전과 성과를 위해 고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조직문화를 변화시키려는 많은 시도들이 실패하는 이유가 뭘까? 바로 리더 때문이다. 특정한 조직문화가 형성되는 데 리더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리더에게 익숙한 것, 당연한 것, 좋은 것은 조직 차원에서도 바람직한 것으로 여겨지기 쉽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쌓여 조직문화가 만들어진다. 그러한 조직문화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결국 리더가 변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직급 체계를 바꾼다고 해도 리더가 예전의 직급 체계에 근거해 계속해서 일을 하고 있다면, 직급 체계를 바꾸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이른바 선도적인 조직문화에 리더가 혹해서 별다른 고민 없이 이를 도입한들 리더 자신이 그러한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이는 조직에 피로감만 안겨줄 뿐이다.  

 

사실 문화가 바뀐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기존에 익숙했던 삶의 형태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변화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매우 크다 할지라도 쉽지 않은 일이다. 매일 7시에 일어나는 사람에게 갑자기 5시에 일어나라고 한다면 별다른 불평불만이 없을 수 있을까? 그런 점에서 조직문화를 변화시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조직문화는 정답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없다. 모든 것이 정답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이 오답이 될 수 있다. 맞고 틀리는 게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특정한 조직문화가 당연한 해답으로써 존재할 수는 없다. 

 

결국 조직문화라는 중요하지만 막연하고 간단한 것 같지만 해답이 없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조직에 대한 객관적인 진단이다. 조직에 대한 제대로 된 진단이 이루어지지 않은 채 추진되는 '좋아 보이는' 조직문화의 도입은 그 누구에게도 득이 되기 어렵다. 조직문화에 대한 고민의 출발은 조직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고 현재 어떤지를 정확하게 아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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