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리어의 첫 단추를 꿰매려는 사람으로서 가장 듣기 무서운 말은 '첫 직장이 중요하다' 혹은 '커리어에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등의 말이다. 진짜 무섭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커리어 패스에 대한 구상이 전혀 없으며, 내가 일관성 있게 밀고 나갈 만큼 좋아하는 분야가 뭔지도 모른다.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지만 그 말에 사로잡혀 2년, 3년 백수 상태로 지내는 사람들도 많이 봐왔기 때문에 어디까지 타협해야 하는 지도 잘 모르겠다.
설령 내가 명확한 구상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원하는 직장에서 나를 원하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첫 직장도 중요하고, 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갈만한 방향성도 잡아야 하니까 내가 원하는 직장에서 나를 받아줄 때까지 몇 년이고 기다려야 할까? 첫 직장이 중요하다고 하는 말의 이면에는 알아주는 대기업이나 번듯한 공사를 첫 직장으로 삼지 못하면 앞으로의 이직 생활이 별 볼 일 없을 거라는 의식이 알게 모르게 깔려있는 것이 아닐까?
그럼 일단 이직을 고려해서라도 첫 직장이 갖는 중요성을 무시할 수는 없으므로 남들 보기에도 좋고 처우도 좋은 직장에 처음으로 입사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이런 마음을 먹었다고 해서 바로 입사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만) 물론 이 과정에서 내가 평생을 업으로 삼고 싶은 직무에 배치되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즉, 손꼽히는 좋은 직장에서 내가 원하는 직무에 배치될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나는 이 지점이 모순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평생직장'에 대한 불신과 더불어 커리어 패스에 대한 열망이 강해지면서 우리는 첫 직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다음 직장을 생각해보아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우리는 첫 직장의 중요성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스스로에 대한 정확한 분석 없이 일단 좋은 직장에 취직하는 것에 열을 올린다. 첫 단추를 일단 좋은 직장으로 꿰매기만 한다면 나머지 커리어 패스는 차차 생각해도 괜찮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아무 생각 없이 곧장 뛰어든 직장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길을 발견하는 것이 쉬울까? 그래서 어렵게 들어간 회사를 1년 내에 그만두고 뛰쳐나오는 신입사원들이 많은 것이다. 맞지 않는 옷을 꾸역꾸역 입고 다녔던 지난날을 돌이켜본다면, 퇴사한 사람들이 같은 직종, 같은 직무에 다시 도전하는 경우보다 다른 업무에 도전해보는 경우가 더 많지 않을까? 만약 그렇다면, 여기서 커리어의 일관성이 무너지는 것이다.
첫 직장이 중요하다는 말과, 커리어의 일관성이 중요하다는 말이 절대적으로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구구절절 쓴 게 아니다. 현실적으로도 대기업에서 이직을 하려는 사람들이 보다 더 쉽게 이직에 성공하고, 커리어의 일관성을 가진 사람들이 개인의 전문성을 키우는 데에 더 많은 이점을 가진다. 그렇기 때문에 일견 수긍이 가지만 그 말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도 아님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마치 첫 직장이 듣도 보도 못한 회사라면, 2년 3년 이곳 저곳 들쑤시고 다니는 커리어라면 앞으로의 인생도 보잘 것 없을 것처럼 치부하는 게 싫다. 첫 직장이 좋은 직장이 아닐 수도 있고, 커리어에 일관성이 없어도 괜찮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이 스티브 잡스의 Connecting dot 개념을 직업에도 연관 지어 생각한다면 우리가 이렇게까지 겁먹으면서 살 필요가 없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