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취업 준비가 길어지면서
땅굴 파고 들어가고 싶은 만큼 마음이 힘든 적이 많다.
행여 누구랑 마주쳐서 반갑지도 않은 안부를 물어볼까 봐 걱정이고,
아무 악의 없는 말에도 쉽게 상처받고 토라진다.
나가서 돈 쓰는 것도 싫고, 쓸 돈도 없어 혼자 궁상맞게 군 적도 많다.
걱정돼서 건네는 말에도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나를 못 알아보는 사회 탓, 기업 탓도 엄청 한다.
주변에 잘된 사람을 보면 배 아프고 질투 난다.
그에 비해 나는 여태 뭐했나 싶고
어디서부터 내 인생이 잘못됐나를 한참 생각하기도 한다.
백수라 힘든 건 구구절절 이것 말고도 많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건
부모님의 자존심을 지켜드리지 못했다는 죄책감이다.
부모님의 삶은 부모님의 삶이고,
내 삶은 내 삶이라고 합리적이고 냉정하게 말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는 어째 그렇게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혼자만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난 사실 계약직으로 일해도 상관없고, 아르바이트도 상관없다.
월 120 받으면서 일해도 좋고, 4대 보험 안 들어도 무방하다.
이 과정들이 내 삶의 큰 그림 중 일부라고 생각하면서 감내하고 살 수 있다.
지금 당장은 뒤처져 보일지라도 이 경험들이 자양분이 되어,
더 큰 세계로 연결해주는 점이 되리라 스스로를 다독이며 살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을 나 혼자만이 아니라
부모님도 함께 감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순간 두려워진다.
내 성취가 부모님의 자존심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알기에
내가 변변찮게 살아가는 것은 곧 부모님의 자존심에 상처 입히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당장 별 볼일 없어서 무시당하는 건 어찌어찌 참겠지만,
부모님이 그런 나 때문에 위축되는 모습은 절대로 보고 싶지 않다.
그래서 눈을 낮추기가 어렵다.
내 자존감은 내 안에서 저절로 나오는 건 줄 알았는데
이제 보니 그 안에는 부모님의 인정이 꽤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취업 여부를 떠나
내가 중심이 좀 더 단단하게 잡힌, 멋있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앞으로 그려나갈 삶의 모습에 확신이 있어서
부모님도 설득할 수 있는 그런 자신감 넘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좋은 곳에 취업만 하면 바닥 치던 자존감도 다시 살아날 거라 생각했는데,
그것도 어쩌면 순간의 성취에 따른 순간의 회복이 아닐까 싶다.
살다 보면 지금보다 더 실망스러운 때가 있을 수도 있고,
마음처럼 일이 안 풀리는 시기도 많을 텐데
그때마다 내 자존감을 부모님의 인정, 주변사람의 인정에 의존한다면
결국 나는 직장인이 되어서도 취준생 시절과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성취를 통해 부모님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욕구 그 이상으로,
때에 따라서는 내 주변 사람들을 설득하는
외로운 싸움을 할 용기도 있어야 한다.
나처럼 취업준비에 지쳐
자존감을 잃은 취업준비생들이 많을 거라 생각한다.
같은 취업준비생으로서 조금이나마 위로를 해보자면,
어둡고 깜깜한 지금 이 시기가
내 자존감의 진짜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앞으로 이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이 자존감을 어떻게 지켜갈 것인지
고민해보고 연습해볼 수 있는 기회라 생각했으면 좋겠다.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