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무엇을 희구해야만 하는가를 안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사람은 한 번밖에 살지 못하고 전생과 현생을 비교할 수도 없으며 현생과 비교하여 후생을 바로잡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도무지 비교할 길이 없으니 어느 쪽의 결정이 좋을지 확인할 길도 없다. 모든 것이 일순간, 난생처음으로, 준비도 없이 닥친 것이다. 마치 한 번도 리허설을 하지 않고 무대에 오른 배우처럼.
-밀란 쿤데라,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中-
대학을 졸업하고 평생을 간절히 원해온 직업을 결정하는 시험에서 연거푸 낙방하고, 어렵게 취업으로 눈을 돌렸으나 그마저도 매일 불합격 통보를 받으며 살았던 적이 있다. 그때의 나는 영혼도, 생각도 없었다. '직업 자체를 꿈으로 삼았기 때문에 실패했을 때 타격이 큰 것이다.'라는 원론적인 비판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비판에 일견 수긍이 가지만, 그래도 나는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참 못됐다는 생각을 한다. 살고자 하는 삶이 꿈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직업이 꿈이 될 수도 있다. 살고자 하는 삶을 살지 못해 슬픈 것처럼, 얻고자 하는 직업을 얻지 못했을 때도 슬픈 건 마찬가지이다.
밀란 쿤데라의 말처럼, 우리는 아무런 준비 없이 무대 위에 던져진 아마추어 배우와 같다. 그래서 어떤 삶의 태도가 옳고, 어떤 방식이 적합하며, 어떻게 살아야 완벽한 삶을 살 수 있는지 쉽게 판별할 수 없다. 더 비극적인 것은, 우리가 마주한 무대가 모두 제각각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가 있는 무대 위에 설 수도 있고, 처음부터 끝까지 물세례만 받는 무대 위에 설 수도 있다. 그래서 100명의 사람이 있으면 100가지 삶이 있는 것이다.
준비 없이 뛰어든 무대에서 실수가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무대와 진짜 삶이 다른 점은 재상영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진짜 삶에서는 재상영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에 실수를 해도, 실패를 해도 어쩔 수 없이 남은 삶을 계속해서 이끌어나가야만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남의 말에 지나치게 휩쓸리다 보면, 재상영이 불가능한 자기의 삶을 남의 이야기로 가득 채우게 된다.
처음 살아보는 삶이니 실수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다. 모두 다른 환경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가고자 하는 종착역이 모두 다를 수도 있다. 문제는 우리 모두 처음 살아보는 삶이며, 각기 다른 환경에 내던져졌음에도 불구하고 모든 사람들이 같은 방식으로, 같은 종착역을 향해 달린다는 것이다.
같은 속도로 달리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거나 멈춰 쉬는 사람들에게는 금세 독촉을 하기 시작한다. 이탈자의 경우 더 심각하다. 정해진 방식대로 달리지 않고, 정해진 종착역이 아닌 곳을 향하는 이탈자에게는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다. 이탈자가 실패했을 때는 가혹하기 그지없는 시선을 던진다. 과장이 심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가해자의 심정이 아니라 피해자의 심정으로 재구성하는 게 맞다고 본다. 유독 우리 사회는 이탈자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으니까. 이런 곱지 않은 시선이 무서워서 우리는 재상영이 불가능한 우리의 삶을 남의 이야기로 가득 채우게 되는 것이다.
같은 속도로 달리지 못하고 중도 탈락하거나 멈춰 쉬는 사람들에게는 금세 독촉을 하기 시작한다. 이탈자의 경우 더 심각하다. 정해진 방식대로 달리지 않고, 정해진 종착역이 아닌 곳을 향하는 이탈자에게는 저주에 가까운 비난을 퍼붓는다. 이탈자가 실패했을 때는 가혹하기 그지없는 시선을 던진다. 과장이 심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상황은 가해자의 심정이 아니라 피해자의 심정으로 재구성하는 게 맞다고 본다. 유독 우리 사회는 이탈자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으니까. 이런 곱지 않은 시선이 무서워서 우리는 재상영이 불가능한 우리의 삶을 남의 이야기로 가득 채우게 되는 것이다.
우린 모두 준비 없이 무대로 뛰어든 아마추어 배우다.
그런 아마추어 배우가 관객에게 원하는 것은 무대 위로 난입해 연기 지도를 해주는 것이 아닌, 그저 공연이 끝날 때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어 주는 것, 그게 전부이지 않을까.
그런 아마추어 배우가 관객에게 원하는 것은 무대 위로 난입해 연기 지도를 해주는 것이 아닌, 그저 공연이 끝날 때까지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있어 주는 것, 그게 전부이지 않을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