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대기업에 입사한 지 2년차가 돼 가는 선배를 만났다. 처음 생각과 달리 직무에 대해서도, 기업에 대해서도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자기 위의 상사들을 보다 보면 이대로 치킨집CEO테크를 타겠구나 싶다고 했다. 이대로는 안되겠다 싶어서 그만두고 다른 일을 하고 싶지만 그 다른 일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3년차 대리는 달고 나가야 경력으로 인정된다는 풍문이 발목을 잡고, 내년에 예정하고 있는 결혼이 또 발목을 잡는다고 했다.
선배를 보면서 알면서도 빠져나올 수 없는 덫에 걸려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렇다.
기업이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불길에 뛰어드는 나방처럼 이름 좀 들어본 기업이라면 어디든 지원하고 있다. 남들이 알아주는 직장에 취직하지 못하면, 연봉이 적으면 주변 사람들이 무시할까 봐 대기업 취업을 희망한다.
그렇게 나 자신을 배제시킨 채 내린 결정이 쌓이고 쌓여 돌이킬 수 없는 순간으로 이끈다는 것을 알면서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자유의지에 의한 결정을 내린다고 착각한다. 사회의 시선, 부모님의 기대까지 모두 고려하여 내린 결정 역시 자유의지에 의한 결정이라고 합리화한다.
남들이 규정한 '성공한 삶의 모습'을 무비판적으로 내면화하고 있다면, 그 같은 상황에서 내린 결정이 진정한 자유의지의 발현이라고 볼 수 있을까?
이는 외부의 목소리를 자신의 목소리와 혼동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외부와의 타협은 스트레스와 갈등상황을 줄이는 삶의 처세 중 하나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외부의 목소리에 의지하고, 스스로를 주의 깊게 살피지 않는 것은 자기 인생을 내던져버리는 행위와 같다.
나는 지금 취업을 앞두고, 내 인생을 아무렇게나 내던져버리는 중이다. 이렇게 내던져버린 인생을 다시 찾고자 하는 시기에, 나는 크나큰 비용을 치뤄야 할 지도 모른다.
그러니 잠깐 쉬어야겠다.
발 붙일 곳 없이 홀로 떠다니는, 자다가도 몇 번을 일어나서 한숨을 쉬는 취업준비생이지만 그래도 잠깐 쉬어야겠다. 나를 좀 살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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