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속 여름휴가'라고 하면 지금 여름이 펼쳐진 나라를 상상하신 분들이 많지 않을까 생각되네요. 말 그대로 현재 겨울인데 여름에 쓰지 못한 여름휴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어째서 쉬는데도 쉬는 게 아닌 것 같은 느낌입니다. 남들 쉴 때 같이 쉬고, 남들 놀 때 같이 놀고 하는 것이 더 나은 듯해요.
휴가 시작인 금요일은 찾는 분들이 얼마나 많으신지, 전화기 배터리가 0%가 될 때까지 알뜰하게 나를 사용하십니다. 유럽 고객까지 자기 휴가 들어가니 요청을 블라블라 하고 갑니다. 누군가 나를 찾아 주는 것이 즐거운 일이기도 하지만 사람 마음이 항상 그런가요? 해외영업 특성상 내려놓고 살뿐이죠. 나중에 누군가 아무도 나를 찾지 않는 다면 또 슬픈 일이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누구나 상황이 바뀌면 판단이 바뀌는 것이죠. 그 속에서 일정한 자신만의 규칙이 품격을 결정합니다.
다른 시간에 사는 사람들은 나와 다른 공간에 존재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변 사람들은 다른 공간에서 이국적 문화를 즐기는 것만 상상하지, 이로 인해서 익숙해진 내 저녁의 삶은 관심이 없습니다. 그 차이 속에서 무엇인가를 배우고, 무엇인가를 선택(선택은 포기를 동반함) 합니다.
크리스마스와 일요일을 보내고 도서관엘 갔습니다. 아이들은 방학을 하지 않았고, 아저씨가 특별하게 갈 곳이나 할 일이 없기도 합니다. 겨울에 홀로 여행을 떠난다면 돌아올 땐 집 열쇠가 바뀌겠죠. 그렇게 용감하게 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무엇보다 다들 출근 중이라는 조건이, 못된 일탈의 즐거움을 줍니다. 혼자노는 불편함도 줍니다. 책이라도 보며 쉬려고 했더니 어김없이 한주의 시작은 메신저에서 용솟움치는 우리 팀 백성들의 아우성입니다. 출근시간에 딱 맞춰 시작합니다.
머피의 법칙인지, 뒤지니랜드 익스프레스 평생 회원권인지, 전생에 단군 할아버지 쌍싸대기를 연타로 날렸는지 OTL... 팀원들의 어려움을 메신저로 대응하다 보니 감정노동이 됩니다. 난 버튼 누르면 대답해야 할 의무가 있는 기계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잠시 자괴감도 듭니다. 그런데 관리자가 되어 간다는 것은 대답해야 할 의무가 생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자리에 앉혀놓고 좀 더 좋은 대우를 해주는 이유입니다. 팀원들이 팀장 없어도 알아서 한다면 팀장은 필요 없죠. 자기 자리에 할 일이 없으면 승진을 하던가 집에 가던가를 결단할 때입니다.
오늘은 연락을 끊고 쉬려니 전화가 울립니다. 하루도 문제가 없던 날은 없고, 업무 지침을 주고 저녁에 잠들었는데 그 새를 못 참고 러시아 고객이 전화를 했었군요. 집에서는 일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운 지 7-8년쯤 됐습니다. 집에서도 일하기 시작하면 가족들과 단절되는 시간이 됩니다. 다른 시간대에 살며 함께하는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가족을 위해서라도 이 원칙은 지키려고 합니다. 러시아 고객이 요청하는 메시지를 날려대서 잠시 해당 메일만 얼른 찾아서 회신을 하게 됩니다. 완료 후에 나타난 그룹웨어 메일창에서 "사장님 주재 팀장 간담회~~오후 3시"라는 공지를 봤다. 보자마자 내 마음에 든 생각을 아주 솔직하게 말하자면 "하하하하~~ 모르겠고 난 쉴테다"입니다. 점심 약속도 있고 말입니다.
자 여러분들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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