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 보면 비극 - 3,1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바라 본 종무식 날 인사발령
오늘도 휴무임에도 중요한 업체와의 미팅으로 잠시 사무실을 들르게 됐다. 종무식이기도 하고 팀원들에게 다가오는 새해와 한 해를 보내는 마무리 인사도 해야 하지 않은가? 사람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병신년은 가고 있다. 요즘 병신년에 병신 안된 게 천만다행이지 하는 마음가짐이 나를 훨씬 자유롭게 한다. 없어보이는 표현이지만 내려놓고 쉴 때는 쉬어야 한다. 나는 기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며칠 안 본 사이인데도 많은 사람들이 찾거나 반기거나 그렇다. 저자식은 왜 휴일에 나와서 민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사정을 일일이 해명할 필요는 없다.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판단되는 일을 할 뿐이다. 그중에 한 가지 판단은 휴가 중에 공지된 팀장 간담회를 제친 것도 포함된다. 나는 회사에 고용된 것이기도 남들이 말하지만, 내가 회사라는 고객에 노동력을 제공하는 주체적인 공급자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후자의 삶을 살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과 현실은 조금 차이가 있기도 하다. 미팅 때문에 돌아다니다 사장님한테 걸려서 "너 때문에 내가 한번 더 하는거야!"라 말씀과 간담회 내용을 압축적으로 하신다. 오늘도 휴가라는 변명은 당근 씨알도 안 먹힌다. 다만 그 뜻이란 "1척이라도 나가야 할 때는 끌고 나가서 왜놈과 맞서라는~~"말로 이해하기로 했다. 솔직히 사장님으로써의 말씀보다는 나에겐 업의 선배가 하는 말로써 다가올때가 더 많다. 큰 배려라고 생각한다.
그때 호사가들의 전언이 메신저를 타고 넘친다. 다양한 감탄사가 입으로 손으로 전해진다. 종무식 날 뭔 일이 있겠어? 누가 병신이 된 것도 아니고 하는 생각과 함께 인사발령이란 소식을 들었다. 개인적으로도 직급과 직책에 관심이 별로 없다. 그것을 추구하면 내가 초라해 지기 때문이다. 내가 종사하는 분야, 나의 업에서 전문가를 추구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급여는 세속적이지만 세속에 살기에 조금 관심이 있다. 왜냐하면 생활이란 부분, 나를 외형적으로 평가하는 작은 부분인 동시에 배품을 조금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룹웨어 접속도 귀찮아 직원들의 노트북을 통해서 발령지를 봤다. 내용을 보니 작년과 다른 파격이 포함되었다. 생각하는 범위에 있기에 놀랍지는 않다. 당연한 예상대로 발령지에 나는 존재하지 않지만, 그 그림자에서 전혀 자유롭지 않은 구도가 되었다. 만족스럽지도 않지만 나빠진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3인칭 관찰자 시점에서 편하게 볼 수가 있기도 하고 앞으로 그려질 새로운 구도에서 1인칭 시점으로도 보게 된다. '음...음...'이란 감탄사가 나온다. 머릿속엔 여전히 '전생에 내가 단군할아버지 쌍 싸대기를 연타로 날렸나?'라는 생각이 맴돈다. 한편의 기대 이기고 하고, 한편의 시험에 들게 하는 세상이 종무식이란 때와 겹쳐 불편하다.
Alignment가 조직에 필요하다. 더 중요한 것은 Alignment가 실행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Alignment의 방향(vision)이 타당한 것인지이다. 그런 점에서 조금 나아졌다는 생각도 한다. 이는 조직의 관점과 조직의 구성원의 입장이다. 그리고 어디에서나 새해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는 필요하다.
하지만 각자의 인생들로 본다면 다르다. 승진자들에 대한 축하와 함께 직위해제나 면직 등 실질적 강등을 의미하는 인사발령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과거엔 사람들의 행동에 분노하고, 그 감정이 적대적으로 표출되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내가 공자도 아니고 그렇게 되고 싶지도 않고 그럴 수준도 아니다. 그들의 공적인 업무와 관련된 행동에 대한 시시비비와 옳고 그름, 비판적 시각은 있다. 하지만 그 사람이 미운 것은 아니다. 사는 방식이 다르고, 그 안목과 시야의 수준이 다른 경우가 많다. 가끔 옳지 못한 일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사적인 따뜻함과 배려는 인간에게 언제나 필요하다. 의견 충돌이 많았지만, 한 분께 새해인사와 위로의 말씀을 전했다. 인생사 새옹지마라는 쿨한 말씀이 나에 대한 큰 배려고 큰 기대도 갖게 하고 또 스스로를 돌아보게도 한다. 따뜻하게 손을 잡는 분의 또 다른 분의 체온이 업무와 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인간이란 조직속에서도 살고, 관계에 따라서도 살아가지만 인간으로써도 살아가는 대면이 있다.
세상의 균형이란 그 속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고 매일이 새로운 일이다. 이런 희비극을 안고 정유년 새날을 맞아야 한다. 또 살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자신들이 걸어온 발거음을 돌아보라고 자신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기 위한 행동이 필요할 때라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말은 때가 되었을 때 필요한 말이다. 지금은 모두에게 시간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 나는 그들이 너무 늦지 않게 다시 자신의 위치로 돌아오길 바란다. 그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런 바람이 비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최선이라고 생각한다. 직책과 직급, 직위라는 세속적인 부분보다 삶이란 큰 그림 위의 관점에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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