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 20년째다. 자랑은 아니다. 자랑은 내가 이룬 성취로 하는 것이지, 무엇인가 오래되었다고 성취가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부러워할지 모르고, 누군가에겐 안 맞는 고인물로 불릴 수 있다. 현대 사회를 현대적으로 살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도 옛날 사람처럼 회사에 간다. 오래전 '밥벌이의 지겨움'이란 책을 읽다 내동댕이 쳤다. 진실은 언제나 불편한 구석이 있다. '밥을 끊지 못하면 일하러 나가야 한다'는 무거운 압박이 자존감에 상처를 준다. 밥도 못 끊는 존재가 되어 매일 걸음을 떼야한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기분이 나빠진다. 아직도 패기와 자부심으로 살아가겠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이 에너지를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할 나이가 되어가는 것이다.
들어간 사람은 못 나가서 안달하고, 못 들어간 사람은 들어가지 못해서 안달을 한다. 그곳에 가기 전 모두들 귀한 집 아들, 딸, 남편, 부인, 아버지, 어머니로 가문을 대표한다. 신기한 일은 그 안에만 들어가면 행복한 조직은 비슷비슷한 이유로 행복하고, 불행한 사람들은 다 제각각의 이해관계와 또 다른 비슷비슷한 이유로 불행하다. 왜 각 집안 대표들이 모여서, 인간이 만든 최우수 발명품인 조직 속에서 이렇게 익사이팅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하는 것일까?
사람들이 모인 조직은 다양하다. 현대 사회에서 기업은 사람들에게 생존 수단을 제공한다. 기업인이 존경받는 이유이며, 많은 사람들이 기업과 공생을 한다. 그리고 기업에는 분업과 프로세스라는 이름하에 다양한 목적, 규칙, 사람들이 혼재하며 다양한 성취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기업은 조직구조에 상사라는 이름의 리더를 만들고 배치한다. 대표이사가 모든 일을 할 수 없고, 인간의 통제 범위를 벗어나면 인간은 협력을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 이를 위임이라고 한다. 위임에 대한 해석은 전적으로 수행자의 역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여기서 다양한 원인이 발생한다. '인사가 만사'라는 말이 달리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를 주고 받는 평등한 고용관계도 왜곡된다. 이상적인 관계는 법률문서에만 존재하는 궤리감을 받는다.
대통령, 사장이 바뀌면 세상과 기업이 술렁거린다. 상사라는 리더가 바뀌면 해당 조직도 그렇다. 그들의 존재가 많은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긍정의 열매는 모두 본인들의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함께 풀어가야 할 숙제다. 거울 속의 내가 현실의 나에게 만들어준 문제가 아니다. 직장생활에서 가장 큰 스트레스는 자신의 과업과 조직생활일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과업과 조직 생활을 확인, 관리, 평가하는 직장 상사의 존재는 아주 다양한 현실과 가상의 모습을 갖는다. 행동을 규제하는 법과 제도로 확장하면 문제는 훨씬 넓어진다. 그런 이야기는 여의도 돔구장에 갈 수 있는 역량 있는 사람의 몫이다. 나는 못된 직장상사라는 부분에 집중해서 이야기하려고 한다.
지금은 회사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의 숫자가 내 손가락보다 훨씬 많다. 지금까지 체험한 다양한 리더들의 에피소드를 담아 볼 계획이다. 좋은 리더의 행동은 마음과 머리에 긍정적인 신호를 준다. 스스로의 배우려는 의지와 게으름을 떨쳐낼 용기가 없을 뿐 이해하는 데 큰 문제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좋지 못한 예가 많을지 모르겠다. '지피지기 백전불태'라고 하듯 나쁜 예는 마케팅 case study처럼 예방접종 또는 준비라고 생각해주면 좋겠다.
리더의 나쁜 행동은 사람들에게 당연히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나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당히 부지런하다. 속수무책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훨씬 더 부지런해질 필요가 있다. 내가 살아가며 깨달은 사실이다. 사회에 나와서 성공하는 방식은 그 방법에 제한이 없다. 새로운 기술, 새로운 제도, 새로운 시장은 계속해서 만들어진다. 하지만 망하는 방법에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그 모든 기술, 제도, 시장과 연관된 흥망성쇠는 결국 인간과 연결되어 있다. 단적으로 성공한 자가 망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그 성공한 방식이다. 틀을 깨지 못하고 망한다. 최근 인문학 열풍이 교양을 넘어 발전의 동력으로 재해석되는 이유는 인간의 역사에서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본질의 변화, 인간 사고의 변화는 매우 더디다. 그 본질을 둘러싼 환경, 물질의 발전이 그 본질이 변했다는 착오를 일으키는 일이 많다. 고전, 인문을 접하는 이유이며, 인간의 세계는 시작부터 지식기반 사회였다. 우리가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았을 뿐이다.
지금의 문제라고 생각하는 사실도 사마천의 사기(史記)와 같이 많은 역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왜냐하면 인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내가 상사라는 가명 속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행동과 인간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은 이유다. 특히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상사라는 존재에게 사용한 시간과 재물이 상당하다. 당연히 무엇인가 좋은 결과를 남겨야 하지 않는가? 계속 흙탕물을 만드는 미꾸라지를 방치하며 물이 맑아지길 기대하는 희망고문은 너무 많은 사람들에게 괴로운 일이다. 미생의 말처럼 회사가 힘들게 하는 것이 아니다. 그 인간의 군집에서 살아가는 것이 힘든 일이다. 직장상사라는 존재의 역할과 행동에 따라서 성과도 삶도 크게 변한다. 그 변화가 옳바른 방향과 틀어질 때를 준비할 필요가 있다. 동시에 스스로 틀릴 수 있다는 마음의 여유와 겸손,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자세가 함께 필요하다.
도발적으로 '못된 상사를 갈구는 발칙한 상상'이라고 제목을 정한 이유가 있다. 호기심과 상상력은 사람들에게 새로움을 준다. 세상의 변화는 자발적이거나 또는 타인에 의해서 영향을 받아서 발생할 수 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내가 받으들이고 시작해야 비로소 진정한 시작이 이루어진다. 그 시작점에 서서 호기심, 상상력, 사회적인 제도가 허용하는 범위를 이해한다면 좀 더 슬기롭게 하루를 살아 낼 수 있다고 믿는다.
관념적으로 상사는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는 능동적인 존재다. 나는 그 요구를 수행하는 수동적인 존재라고 학습하는 경향이 있다. 삶의 주인은 나다. 능동적으로 이해하고 자발적으로 더 좋은 방향으로 가는 것은 나의 의지이다. 최근 매체에 나오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에 모두 입을 모아 비난을 한다. 하지만 당장 자신의 문제가 되면 학습된 방식으로 스스로의 동력을 거세한다. 슬픈 현실이 반복되는 이유다. 내가 살아가는 시대의 슬픈 수준이다. 하지만 상사라는 리더의 의무와 역할은 훨씬 넓고 광범위하다는 것을 천천히 되돌아보면 알 수 있다. 그들에게도 의무가 있고, 지켜야 할 규칙, 제도, 법률, 도리가 있다. 학습된 관념적 인식이 사람들의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방해한다. 이를 잘 이해하고, 슬기롭고 단호하게 대처할 용기도 필요한 시대다. 그 보단 사람과의 진실한 관심과 배려가 더 중요하다. 두려워하기 전에 불완전한 인간의 헛점을 이해하고 함께 좋아질 방법을 찾아가야 한다고 믿는다.
많은 책과 글은 지덕체(智德體) 삼위일체를 성취한 리더를 원한다. 그런데 직장생활을 시작하고 존경할만한 사람을 많이 만났는가? 나는 스스로 부족하고, 박복함 때문에 많지 않은 것 같다. 내가 지위가 조금씩 올라 나보다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그 의미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일런 생각을 할 때, 강렬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삶의 전환을 만들어준 고마운 상사와 삶의 또 다른 전환을 제시한 못된 상사다.
나의 결론은 '상사는 결국 위에서 지위가 낮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살피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부하라는 관점에서 바라볼 때도 상사라는 관점을 바라볼 때도 그렇다. 나의 삶이란 입장에서는 그 일은 기본이 되고 더 발전적인 일과 삶의 조화를 추구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선택적 권력(optional right)의 달콤함을 즐기며, 필수 의무(mandatory duty)를 간과하는 사람들이 많다. 물론 그들의 말로가 해피엔딩보다는 권선징악의 결과가 많다. 세상은 항상 가능성을 안고 있고, 인간에 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있다. 그래서 나는 존경할 사람이 없다면 존경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낮은 지위에서는 그렇게 비난을 하고나서, 자신의 지위가 오르면 급할 때 그 나쁜 방식을 부지불식간에 하는 사람들도 많다. 누굴 비난하고 욕하는 것은 쉽다. 쉬운만큼 얻는 결과도 없고 인식된 그런 정보가 언젠가 사용될 가능성이 높다.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고 나쁜 행동을 삶의 경계로 삼는다면 충분히 좋은 직장생활과 삶을 만들어갈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내리사랑'이란 아름다운 말이 있다. 회사와 세상에는 '장유유서'라는 어마어마한 관습의 벽이 있다. 이 벽을 아름답고 사뿐히 넘어야 할 필요와 때가 있다. 악습이 고착화된 세상이 곧 나의 아이, 가족, 친구 또 그들의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결정한다. 이 정도의 작은 용기는 갖고 살아야 한다. 우리는 매트릭스란 영화 속에 눈을 번쩍 뜨며 세상을 자각하고, 엄청난 잠재력을 분출하는 네오는 아니다. 하지만 좋은 리더들의 모습을 통해서 각자 조금씩 배우고, 나쁜 행동의 싹을 함께 조금씩 줄여갈 수 있다면 좀 더 따뜻한 세상, 사람들이 살아볼 만한 세상에 조금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검색에서 직장생활, 상사라는 단어를 넣어보면 온갖 부정적인 인간 군상의 모습이 조금 줄어들지 않을까 하는 작은 바램이다.
#직장상사를_갈구는_발칙한_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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