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모든 사람은 영업을 한다고 말하기도 한다. 나는 해외영업을 한다. 큰 벼슬도 아니지만, 요즘은 영업을 지원하는 사람이 많지도 않다. 막상 해외영업을 한다고 하면, 해외여행을 다니는 사람처럼 바라보기도 한다. 어제 독립해서 회사를 운영하는 선배와 소주 한잔을 했다. 엔지니어지만 대표이사가 되면 영업도 해야 한다. 말로는 "나는 택배처럼 배달만 해"하시더니 영업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빛이 바뀌었다.
선배의 눈빛 속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느낄 수 있다. 고객은 나한테 설명하고 가르쳐주는 사람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건 고객이 요청할 때만 하면 된다. 고객은 나한테 선생질이 아니라 내가 당면한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또 가끔 화풀이 대상이 돼줄 사람도 필요하기도 하고 말이다.
기업의 전문가에겐 일명 먹물 영업과 먹물 마케팅이 필요하다. 전문적인 지식과 설명, 적절한 용어, 내가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의 핵심적인 장점(Unique Sales Point - USP)을 적절한 사례를 들어서 설명하면 된다. 그 제품을 다시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과정은 먹물 영업의 장르가 아니다. 내 표현방식이면 일상의 언어를 써야 하는 장바닥 영업이다. 우리가 기획한 의도대로 체험하고 느끼게 하는 것이다.
텔레비전을 사러 갔는데, 얼마냐, 잘 나오냐, 모양이 이쁘냐로 의사결정하는 사람과 이 제품이 어느 회사 OLED를 사용하고 어떤 기술과 부품으로 제품을 구현해서 타사보다 좋다는 것을 확인하고 결정하는 사람을 생각해보자. 일단 후자는 재수가 없을뿐더러 현실성도 없다. 없는 것이 아니지만 많지도 않다. 경제가 심리라고 하는 이유를 보면 경제활동이 이루어지는 최전선은 그렇다. 내가 연애를 잘해야 영업을 잘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유는 경청하는 자세와 온갖 스트레스, 말도 안 되는 트집과 집요한 갈굼을 현명하게 대처할 기본자세가 되어 있다고 추정하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 영업은 고객이란 이름의 갑에게서 온갖 불평불만을 들어주는 일이 주업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 대가가 판매라는 과정을 통해서 실적으로 쌓이는 것이다. 이 의견이 맞다면 아담 스미스 할배는 완전 틀린 거다. 내가 월급을 위한 이기적인 마음을 갖고, 고객이란 이름의 사람이 하는 온갖 개드립과 갑질을 들어주고 있다는 말인데.. 이건 아닌 것 같다. 게다가 경제적으로도 맞지 않다. 고객님의 다양한 스트레스로 인해서 몇 푼 되지도 않는 월급을 받아서 매일 힐링을 위해서 나에게 투자되는 돈을 생각해 보면 그렇다. 덤으로 먹게 되는 닭튀김에 맥주 한잔까지 고려하면 고전경제학의 아버지, 아담 스미스 할배의 말은 경제학적으로 틀려도 한참 틀렸다. 자기가 계산을 할 수 없는 것은 죄다 빼버렸기 때문이다. 자존심이 상해서 이런 접근은 멀리하고 싶다.
일반적인 시각이 영업은 낮은 일이고 비슷한 마케팅은 좀 더 폼나는 일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마침 선배가 마케팅과 영업이 무슨 차이냐고 물어보신다. "형님, 이건 내가 먹고사는 밥줄인데 그걸 가르쳐줄 거 같아요?"하며 서로 한참 웃었다.
집에 도착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니 이런 차이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1. 영업을 하는 사람은 마케팅으로 옮겨갈 기회가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케팅은 일반적인 영업분야로 움직이는 것은 어렵다. 이건 갑자기 선동렬 감독이 경기중에 등판하겠다는 신호와 마찬가지다.
2. 영업은 제품과 서비스를 팔고, 마케팅은 사업을 판다. 그런데 초짜를 바로 마케팅에 넣으면 사업을 팔 계획을 수립하는 것이 아니라 자꾸 길거리 찌라시를 돈 들여서 낭비하고, 마케팅을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3. 영업은 어느 규모의 조직이던 필요하지만, 마케팅은 기업의 규모와 산업 표준화에 따라서 필요하다.
4. 영업은 마케팅이 필요한 정보를 모으는 역할을 통해서 기여한다면, 마케팅은 정보를 전략으로 가공해서 영업에게 기여한다.
5. 영업은 개별 고객에 묶여있다면 마케팅은 시장에 묶여있다. 그런데 회의를 하면 영업은 시장을 이야기하고, 마케팅은 개별과 고객과 영업 담당자를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정상에 배를 올린다.
6. 책상머리 영업은 해고를 해도 시원찮다고 생각하지만, 책상머리 마케팅은 뭔가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책상머리 마케팅을 가장 먼저 해고해야 한다. 토끼머리 뿔 날 때쯤 만들어질 무엇인가를 해보자고 하기 때문이다.
7. 영업은 매출을 위해서 돌아다니지만, 마케팅은 결과도 없이 돈 쓰고 돌아다닌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마케팅은 영업보다 두 배이상 돌아다녀야 한다. 물론 어깨 위의 물건을 열심히 사용한다는 각서를 받아야 한다.
8. 나쁘게 말해서 영업은 아무나 시키면 없는 것보다 낫다. 하지만 마케팅은 아무나 시키면 팀이나 회사가 없어질 수 있다.
9. 영업은 시장이란 선 안쪽에서 생존해야 하고, 마케팅은 시장이란 선의 안팎에 양다리를 걸쳐야 산다.
10. 영업은 노크로 시작되고, 마케팅은 발을 뗄 때 시작된다. 둘 다 1분 안 생사가 결정된다. 그나마 영업은 다시 조를 기회가 있다면, 마케팅은 같은 기술을 두 번쓸 기회가 없다.
11. 전략과 수행이란 측면에서는 공동으로 시장을 대응하지만 적대적인 측면이 있다. 마케팅은 전략을 수립한다는 측면에서 검찰과 비슷하다면 실행을 기본으로 하는 영업은 전술적인 경찰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어쭙잖은 마케팅은 영업을 이기기 어렵다. 총(실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갈량과 같이 전체 판을 읽는 안목과 시스템 통찰력(조직의 시스템, 제품의 시스템, 솔루션의 시스템)이 있다면 관우 같은 장수도 바로 떼려눕힐 수 있다.
12. 영업은 안 하는 일도 없고, 못하는 일도 없는 듯한데 하는 것만 한다. 마케팅은 엄청나게 다양하고 하는 일도 많은 것 같은데 잘 되는 것이 거의 없다. 게다가 영업은 실적이 없을 때만 욕을 먹는데, 마케팅은 항상 욕을 먹는다.
둘이 서로 잘났다고 아무리 해봐야 고객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모두 낙화암의 삼천궁녀처럼 다이빙을 해야 한다. 고객의 문제를 해결함으로 고객과 시장에 기여를 하는 것이다. 이 기여가 인정받을 때 영업과 마케팅의 문제인 매출, 실적, 수익, 성장이란 문제는 벌써 해결되어 있어야 한다. 이런 주고받는 상생의 원리를 깨닫는 데는 수업료가 엄청 많이 든다. 이해했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이해를 못하면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매를 버는 일이 부지기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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