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부터 설 전날까지 출장을 간다. 남반구의 출장이 아니면 계절은 비슷하고 온도차만 있는데, 모스크바와 두바이 출장을 연계해서 이동하다보니 -20~30도 지역과 20~30도 지역을 동시에 가야한다. 옷때문에 짐이 두배가 되니 이런 출장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특히 나도 러시아 1월출장은 처음 간다. 추워서 기피하는 시즌이기 때문이다. 러시아 크리스마스를 보지는 못하겠지만 휴가 시즌이기도 하다.
-25도까지 내려가면 쌀쌀하다. 그나마 한국처럼 바람이 많이 불지 체감온도는 한국이 더 춥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갑자기 4월이나 10월에 날리는 눈을 보면 여기가 추운 동네구나하는 생각도 한다. 유트브의 crzy russia -40 degree로 검색하면 기가막힌 영상들이 많이 나온다.
오래동안 러시아 지역을 하다보니 러시아어를 배워볼만도 하지만 그럴지 못하다. 내가 농담으로 읽을만하면 돌아간다고 한다. 키릴어들이 유럽에서 글자를 들고오다 헝클어져서 이렇게 됬다는 농담처럼 봐도봐도 친숙해지지가 않는다. 10년전과 비교해서 러시아에서 영어하던 사람들이 기업체에서 늘어난 반면 러시아 시장을 하면서 러시어를 하는 한국사람은 크게 늘어났다고 보기 어렵다. 불곰국, 우락부락, 철권의 무식하고 힘만 쎈 캐릭터를 연상하지만 러시아를 알아가다보면 참 재미있다.
과거에는 이사가 나오면 밑에 담당 과장, 부장급이 통역해서 절도 있게 보고 한다. 아직도 큰 기업이나 관료조직에서는 이런듯해 보인다. 그렇다고 그들이 못알아 듣는 것도 아니다. 많은 민간기업은 서구기업과 같이 자유롭기도 하고, 덩치들과 달리 낭만과 유머가 넘쳐난다. 문학적인 면도 많다. 우리가 보기에 어리숙해 보일때도 있었지만 그들은 고수하는 원칙을 강조하기도 한다.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지만 정들면 꽤 매력적인 나라가 러시아다. 나도 거래하는 고객사 직원들과 업무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거의 친구처럼 지내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가끔 우스개소리로 한국말 욕을 날리기도 하지만 서로 얼굴보고 이해해가는 것이 사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바로 다가가기 조금 어렵게 느껴지는 나라 하지만 또 친해지면 멀어지기 힘든 나라 사람들이다. 또한 친구의 친구에 대한 배려가 대단히 좋은 나라이기도 하다. 물론 협상의 법칙에서 러시아 방식이 나오기도 한다. 내가 그들을 가끔 대단하게 보는 것은 핵심에 대한 집중력이라고 생각한다.
1달러에 28~30루블이 대량 사회주의 국가들의 환율이었다면, 2014년말부터 60~78루블까지 급격하게 올랐다. 이런 갑작스런 환율인상(가치하락)과 장기간의 유지가 하나의 익숙함을 만들기도 하지만 내부적인 경기침체를 만들기도 한다. 500불이나 당시에 환전해 두었는데, 내려가기도 전에 틈틈히 다 써버렸다. 우리 거래처의 경우 2018년 월드컵 경기장에 설비를 제공하는데 정부의 잦은 입찰, 재입찰이 10회정도 반복되는 사이에 consultant가 사라지는 일도 있었다. 3년정도 IMF체재하의 혹한기를 보낸 한국과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한다. 금년에는 달러영향이 있음에도 좀 좋아졌으면 한다.
러시아도 중국제품들의 사용이 늘어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아주 친한 사이는 아니다. 미국과의 역학관계에서 이들이 합해지면 또 볼만 할 일이다. 일적으로보면 러시아의 높은 기준과 원칙을 중국보다는 한국제품이 훨씬 더 잘 따라간다. 기대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예전과 같은 참신함과 노력하는 모습을 조금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그들이 대국의 꿈을 유지하듯 우리도 우리의 모습을 가꾸어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곳을 뒤로하고 다시 두바이를 가게 된다. 지니가 나오는 멋진 램프들을 파는 시장이 있고, 동시에 세계의 멋진 마천루가 즐비한 곳이다. 매년 전시회에 참가하지만 중동도 러시아처럼 실물경기가 매주 좋지 않다. 60불쯤 기름값이 오르면 미국이 셰일가스를 팔아대다보니 결국 100불이 넘더 기름값이 50불정도에서 머문다. 생산설비와 기술력이 의외로 부족한 이 지역은 결국 대외 수입의존도가 높다.
Sanction이 풀리면 이란정도를 제외하면 사우디, UAE등 시장침체는 정말 어찌해 볼 도리가 없다. 정부발주와 조달등은 축소되고, 관급 프로젝트들의 open/close가 계속되는 상황에 결국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 UAE정부등록이 되어 기대가 있기도 했는데, 이건 고객이나 나나 숨이 턱턱 찬다.
러시아의 찬바람만큼 고온의 먼지바람도 쉽지가 않다. 그래도 짐싸들고 길을 나서는 이유는 그곳에 나를 알고 기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Nomad문화때문인지 3-4시간 늦게 오고, 다음날 와서도 싱긋 웃는다. 늦게 왔다는 잔소리는 한귀로 넘기고 "그래도 내가 오지 않았느냐"하는 말에는 화도 녹아내릴때가 있다. 그렇게 파트너와 친구사이를 오가기 위해서 길을 나서기 때문이다.
오늘 출발하는 팀원, 이쁜 딸을 출산을 알리는 소식, 러시아 가면 차가버섯을 사오라는 형님 메세지를 받다보니 정신이 없다. 그렇게 일하러 간다고 해도 보드카를 말씀하시는 형님들을 보면 살수가 없다. 각 동네별 특성들을 정리해 보려고 했는데 자꾸 오는 톡에 내용이 벌썬 산으로 향한게 아니라 여기가 정상이 되버렸다. 내려가서 청포도맛 사탕이나 한봉지 사와야겠다. 이거 거의 우리나라 특산품으로 잡아도 좋을 만큼 외국인들 반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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