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맞는 직무를 찾는 것은 생각보다 더 중요하다
내 첫 직무는 생산이었다. 화학을 전공해 L사 생산팀에 입사한 건 너무 당연했다. 그러나 일한 지 몇 달이 되지 않아 내 옷이 아닌 게 느껴졌다. 호시탐탐 타 회사 다른 직무로 이직을 시도했지만 잘 되지 않았다. 대신 본사 기획 부문에 기회가 생겨 서울로 올라가 근무하게 되었다. 1년쯤 기획 부문에 근무를 하던 중 옆에 앉은 동기가 영업으로 가게 되면서 나도 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조금 더 덧붙여 말하면 기획에서 다루던 수조 원에 달하는 매출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했다. 그 후 고등학교 친구가 다니던 D사에 두 번의 실패를 경험한 끝에 영업으로 입사하게 되었다.
D사에서 영업의 첫발을 야심 차게 딛었지만, 처음에는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거는 것부터 어색했다. 심지어 용기가 나지 않아 망설이기도 했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친구들이 어떻게 깜작가가 영업을 하냐며 처음엔 무척이나 걱정했던 거였다. 하지만 3년 정도 지나자 이런 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문제는 따로 있었다. 매니저가 하라고 주는 일을 잘 해내는데 나 스스로 일을 만들어하는 건 좀처럼 잘하지 못했다. D사에서 신사업을 맡아해 보았는데, 한마디로 말아먹었다. 간신히 회사에 손해를 끼치지 않았을 뿐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다. 매니저가 또는 회사가 신사업을 하라고 시키니 일을 하는데 내 일처럼 하지는 못했던 거 같다. 즉 주어진 일은 잘 하지만 주도적으로 일을 하지는 못한다는 평가를 D사에서는 받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내가 영업으로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어떤 영향을 주변에 미치는지 잘 몰랐던 거 같다.
반면 J사에서는 규모가 작은 비즈니스를 운영하다 보니 내가 하는 일이 바로 비즈니스에 영향을 미쳤다. 어려운 고객을 상대로 한다고 하여도 어디 숨을 데가 없이 고객과 항상 부딪혀야 했다. 그러다 보니 고객과의 관계는 정말 잘 쌓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매니저가 세운 신사업 전략을 바탕으로 일을 하다 보니 이 전략이 시장 상황에 맞는 것인지 나 스스로 판단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만약 내가 신사업 전략부터 수립을 했다면 다르 게 했을 포인트가 있었다. 즉 J사에서도 주도적으로 일을 하지는 못했다고 생각한다. 이때만 해도 내가 천상 영업인지 판단하지는 못했다. 단지 고객과 회사 내 직원과의 네트워크 형성은 무척 잘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T사로 와서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됐다. 성장 기미가 보이지 않는 고객사를 성장시켰다. 내가 리더 역할을 해야 했기 때문에 누가 어떻게 하라고 이야기해 주지 않았다. 스스로 고객사 네트워크를 쌓았고 일을 진행시켰다. 그렇지 않고서야 2년 만에 매출 두 배로는 만들지 못했을 것이다. 뭐가 그렇게 날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을까?
무엇보다 T사에서 내가 하는 일이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란 확신이 들었다. 나는 사람을 잘 사귀고, 내 주변 사람에게 비전을 잘 심는다. 고객사를 담당하는 리더로서 내 팀원들에게도 비전을 잘 심어주었다. 그런데 내가 영업 이사가 아니라 영업 대리 신분이었다면, 고객사와 내 팀원에게 비전을 심어주기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즉, 내가 어떤 일을 잘하기 위해서는 자질도 중요하지만, 자질이 성숙될 때까지 시간도 중요하다. 두 번째로 성공 체험을 했기 때문이다. 입사 첫 해부터 규모가 작은 3개 프로젝트를 리드하고 성공시켰다. 그러자 더 큰 프로젝트를 할 자신이 생겼다. 그다음 해 실제로 큰 프로젝트를 맡게 되었을 때 당황하지 않고 잘 이끌어갈 수 있었다. 그다음 해에는 난도가 높은 프로젝트를 맡았다. 또 성공시켰다. 이렇게 반복적으로 성공 체험을 하자 내게 맞는 일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다음에 실패를 하더라도 내 자질 부족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주변에서의 피드백이다. 내 매니저, 동료, 팀원으로부터 받는 피드백은 입사 첫해부터 계속 바뀌었다. 입사 첫 해는 수군수군하는 것이 보이더니, 1년이 지나 작은 프로젝트를 성공시키자 수군거림이 줄었고, 2년이 지나 큰 프로젝트를 연달아 성공시키자 존중받는 게 느껴졌다. 성과 평가를 잘 받았던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면 내가 신입사원으로 다시 돌아간다면 내게 맞는 직무를 찾기 위해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먼저 내게 잘 맞는 직무가 무엇인지 정의를 할 필요가 있다. 내가 잘하는 직무를 찾을 것인지 내가 좋아하는 직무를 찾을 것인지부터 정의해야 한다. 나의 경우는 내가 잘하는 직무를 선택했다. 좋아하는 직무를 잘하면 정말 좋겠지만, 둘 중에 고르라면 난 백번도 더 내가 잘하는 직무를 고를 것이다. 난 좋아하는 건 취미로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로 가능한 다양한 직무를 해보려고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 난 생산, 기획, 영업, 마케팅, 신사업 개발 등 다양한 직무를 경험했고, 이 중에 내가 어떤 일을 잘하는지 알아냈다. 내가 생산을 계속했다면 영업이 이렇게 내게 잘 맞는 직무인지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정확히 이야기하면 신사업 개발을 동반한 영업이 내게 가장 잘 맞는 직무다. 세 번째로 어느 한 직무가 맞는다는 감이 오면, 최소 몇 년은 해봐야 한다. 사실 10년은 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다. 영업 경력만 따져도 난 15년이 훨씬 넘는다. 그런데 만 13년이 넘어서부터 내가 영업 체질이라는 걸 깨달았다. 물론 내가 늦게 깨달은 것일 수도 있고, 사람에 따라 일찍 깨닫는 경우도 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자질이 충분해도 자질이 성숙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어떤 직무가 내게 딱 맞는 옷이란 걸 느끼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성과를 내봐야 한다. 대단한 성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성과라도 좋다. 남들이 인정할만한, 그리고 스스로 인정할만한 성과를 반복해서 내봐야 한다. 그때 내 마음이 어떤지, 주변 사람들 피드백이 어떤지 관찰해 봐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긍정적이라면 그 일은 내게 맞는 직무일 가능성이 높다.
내게 맞는 일을 찾는 건 생각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내게 맞지 않는 일을 하루에 8시간 이상하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마다 다른 생각을 가질 수도 있겠다. 맞지 않는 직무를 하지만 돈을 벌 수 있으니 싫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취미나 가정생활에서 만족감을 찾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왕이면 회사에서도 내게 맞는 일을 찾아 성과를 올리고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면, 더 좋지 않을까? 특히 직장 생활을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분들은 지금 하는 일이 얼마나 내게 맞는 직무인지, 얼마나 만족을 하고 있는지 한 번쯤 생각해보면 좋을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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