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 4년 만에 과장을 달아 나도 일 좀 한다고 으쓱거릴 때, 신입사원 C가 입사했다. D사에서 최초로 뽑은 신입 영업 직원이었는데, 될성부를 잎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할까, 입사 2년 차에 소위 능력자만 간다는 기획으로 가더니 금세 부서장(상무)의 이쁨을 독차지하게 되었다. 그전까지 상사들의 이쁨을 받던 난 셈이 났던 거 같다. 도무지 왜 C가 그렇게 일을 잘한다는 건지 이해가 되지도 않았고 말이다.
그런데 왜 C가 그렇게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는지, C가 하던 업무를 내가 인수인계를 받아보니 이해하게 되었다. 아, 이 친구 대단했다. 본인이 스스로 기획 업무 매뉴얼을 만들어뒀다. C의 전임자가 넘겨준 업무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고 판단했던 것 같다. 고작 입사 2년 차에 지나지 않은 사원이 그 누구도 시키지 않았는데 문제를 스스로 발견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누구도 시키지 않은 업무 매뉴얼을 개발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매뉴얼에서 문제가 발견될 때마다 스스로 업그레이드했다. 게다가 C가 하던 업무는 사업부 손익을 관리하는 업무였다. 사실 이런 업무로 두각을 나타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200억 남짓 되는 부서 매출을 분석하는 게 뭐가 그렇게 대단할 게 있겠는가? 그런데 이 업무를 차별화했다는 게 정말 대단하다. 얼마 전 링크드인으로 확인하니 C는 30대 후반에 아시아 지역 영업 책임자가 됐더라. 신입 사원 때의 C를 생각해본다면 그리 놀랄 일도 아니다.
이렇듯 능력 있는 직장인은 스스로 문제를 발굴하고 그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다. 사실, 문제는 누구나 해결할 수 있다. 물론 어느 정도 수준으로 해결하느냐는 다르지만 말이다. 더 중요한 건 문제를 발굴하는 능력이다. 문제를 발굴하는 건 IQ의 영역은 아닌 거 같다. 그 보다 업무를 바라보는 태도가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거 같다. 주어진 업무를 조금 더 잘할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는 태도, 이걸 열정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최근 ‘열정’이란 단어가 ‘열정 페이’ 같은 부정적 의미로 사용되기도 해 이런 태도를 열정이라고 정의하기는 꺼려진다. 그보다는 몰입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나을 거 같다.
업무에 몰입을 하면 문제가 보이기 마련이다. 나 역시 전 직책에서 하던 업무에 몰입하다 보니 내 고객사를 2~3배는 더 성장할 수 있는 고객사로 규정하게 되었다. 성장 가능성이 보였기 때문이다. 2~3배 성장하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보였다. 당연히 2~3배 더 성장하기 위해서는 고객사에 생산 설비가 부족했고, 고객사의 영업/마케팅 전략도 바꿔야 했다. 이게 내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이렇게 업무에 몰입하는 태도를 가지면 문제가 달리 보인다.
반대로 업무에 몰입을 하지 못하는 예도 한 번 들어보겠다. 전 직장에서 한 총무팀 직원이 10년 넘게 써서 낡은 의자 50개를 새 것으로 교체하는 업무를 진행하는 걸 지켜볼 기회가 있었다. 의자 교체 예산을 확보한 후 예산에 맞는 의자로 한 모델을 결정한 모양이었다. 그런데 의자 색깔을 두고 총무팀 직원이 고민하는 걸 듣게 되었다. 그러더니 본인 마음대로 한 색깔로 지정해 구매하려고 하는 거 아닌가? 그래서 지켜보던 내가, ‘아니 그러지 마시고, 직원들한테 메일로 의견 물어보시면 되지 않아요?’라고 물으니, ‘그냥 아무 색깔로 하면 되지 꼭 그래야 해요?’라고 되묻는 거 아닌가? 만약 의자 1천 개를 교체한다면 이해할 수 있다. 직원이 주문한 의자를 색깔에 맞춰 정확히 배급하는 것도 큰일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작 50개라면, 얼마든지 직원 기호에 맞는 색깔로 제공할 수 있는 일이다. 내 조언이 먹혔는지 직원들이 원하는 의자 색깔을 고를 수 있었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이 직원에게 문제는 낡은 의자였던 거 같다. 그러나 조금 더 생각해보면 문제는 낡은 의자가 아니라 낡은 의자 때문에 불평하는 직원이다. 의자가 너무 낡았다며 직원들이 바꿔 달라고 요청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금 더 다양한 옵션을 제공하기 위해 미리 의자 교체 관련 설문을 받을 수도 있는 일이다. 허리가 불편한 직원에게는 허리에게 좋은 의자를, 키가 작은 직원에게는 조금 더 낮은 의자를, 더위를 많이 타는 직원에게는 메쉬형 의자를 제공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일을 ‘처리’만 한다. 의자 교체 같은 단순한 업무라도 이렇게 업무 질이 차이가 날 수 있다는 걸 생각보다 사람들이 모르는 게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