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피곤했는지 몇 차례 잠에서 깨긴 했지만 잘 잤다는 느낌이었다. 오래간만에 어디를 꼭 가야 할 일이 있으니 귀찮을 법도 한데 이상하게도 출근하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원래 출근 시간인 8시까지 갈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를 인사팀으로부터 들어서 회사 셔틀을 이용하지 않고 그랩을 타고 회사에 느지막이 도착했다. 집에서는 약 20킬로 미터 떨어진 곳, 한국 같으면 지척이지만 이곳 싱가포르에서는 엄청나게 먼 거리다.
나의 채용 과정을 도와준 A는 오늘 재택근무라 인사팀 B가 나를 맞았다. B가 내어준 비자 서류와 오퍼 레터에 다시 한번 사인하고, 간단히 회사 내부 투어를 했다. 그리고는 곧 IT부서로 안내되어 랩탑을 수령받았다. 역시 매끄럽게 진행될 리가 없다. 랩탑은 받았지만 오피스와 아웃룩이 모두 되지 않는다. 랩탑을 내게 전달하는 친구도 뭘 할 줄 모른다. 이런 일을 전담하는 IT Helpdesk 직원과 함께 온라인으로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이내 엑셀이나 파워포인트는 깔렸지만 아웃룩이 되지 않는다. 내 이메일 계정이 생성되지 않았나 보다. 재입사로 처리되어 예전과 같은 IT 계정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뭔가 이상하다. 이메일 계정을 처리하는 부서 직원에게 사내 메신저로 연락이 왔다. 계정이 30일 이상 사용되지 않아 다시 세팅해야 한단다. 2시간 정도 기다리니 이메일 계정이 완성되었고, 아웃룩을 열어 볼 수 있었다.
이런 와중에 나의 보스 C는 왓츠앱으로 온보딩을 축하한다며 내일 콜을 하자고 한다. 그러더니 커피 한 잔 해도 된다면서 얼굴을 보면서 이야기하잔다. 사실 이러면 재택근무의 의미는 없는데, 난 상관은 없다. 이 이야기를 마치고는 내가 읽어볼 것들 몇 개를 전달해 주었다. 예전에 봤던 자료였다. 내가 할 일이 되니 꼼꼼히 보게 되었다. 그러고 나서 예전에 한국 마케팅에서 받아둔 경쟁사 관련 자료를 열어봤다. 이건 내가 3개월마다 작성해야 하는 자료다. 이것만 제대로 해도 할 일이 꽤 많겠다 싶었다. 각 마켓 상황을 먼저 이해해야 하고, 그 후 경쟁사 상황을 같이 이해해야 한다. 흠, 놀지는 않을 거 같다. 이런 일을 천천히 익히면서 코로나바이러스 이후에 본격적인 활동을 할 수 있게 아이디어를 내면 좋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바로 이런 점을 내 매니저는 염두한 듯, ‘We will have to be a bit creative’라는 말을 내게 남겼다.
일을 하고 싶었나 보다. 집에서 일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는 대로 집으로 돌아가라고 이야기 들었는데, 3불짜리 점심도 먹고 퇴근 버스 타고 퇴근했다. 이메일 계정 세팅이 늦어진 것도 있었지만, 놀다가 다시 일을 하게 되니 집중이 이상하게 잘 됐다. 꽤나 집중했는지 오후 늦게는 머리가 살짝 지끈거렸다. 머리를 식힐 겸 2층 사무실도 들러보았다. 예전에 유럽 본사 출장에서 봤던 깔끔한 느낌으로 인테리어가 되어있다. 업무 환경은 생각했던 것보다 좋아서 마음에 들었고 앞으로가 무척 기대된다.
P.S.
‘혹시라도 외국계 회사에 대해 궁금한 사항이나 도움이 필요할 경우 아래 메일로 문의를 주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