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직장 생활에서 꽤 많은 상사와 일을 했다. 그간 많은 상사와 일하면서 느낀 점, 특히 어떻게 상사를 활용하면 좋은지 이야기해 보려 한다.
가장 오래 근무한 외국계 D사에서는 여러 상사와 일을 했다. A 부장님, R 부장님, S 부장님 그리고 H 상무님 등 네 분이 있다. 모두 훌륭한 분들이었는데 특히 H 상무님과 추억이 많기도 하고 지금까지도 만남을 지속하는 분이라 각별한 마음이 있다. 지금은 못하지만 한국에 있을 때에는 일 년에 두세 번은 사무실로 찾아가 한 시간은 이야기 나눴다. H 상무님은 전형적으로 쿨한 상사였다. 도와줄 건 확실히 도와주고, 이끌어주면서도 날 보낼 때는 쿨하게 보내줬다. 본인이 깜작가 인생을 책임질 수도 없는데 본인이 하겠다는 거 막을 수 없다면서 부서를 옮길 때도, 회사를 떠날 때도 응원해 주셨다. 그런데 같이 일할 때를 생각해보면 결코 쉬운 상사가 아니었다. 한 분야에서 30년을 일하신 분이라 모르는 게 없어, 뭘 해가도 부족하다고 느끼셨던 것 같다. 항상 왜 더 끈질기게 생각해서 더 나은 결과물을 가져오지 않냐고 다그치셨다. 10년 차 정도 됐던 시절이라 나도 부족한 게 많아 그때는 힘들었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너무 당연한 말씀을 하신 거였다. 그 분과 일하면서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 많이 생각할 수 있게 됐다. 즉 H 상무님은 배울 게 많았던 상사였던 셈이다. 이렇게 일하는 틀을 잡아야 할 때에는 잔소리라 느껴질 만큼 피드백이 많은 상사와 일하는 게 낫다. 이렇게 해도 저렇게 해도 피드백이 없는 상사와 일하면 마음은 편할지 몰라도 성장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이후에도 이렇게 피드백을 잘해주는 상사를 만났는데, 그게 외국계 J사의 C 부장님이다. 내게는 여러 가지 면에서 정말 고마운 상사다. C 부장님은 새로운 업무에 잘 적응할 수 있게 잘 이끌어줬다. 새로운 인더스트리에서 새로운 직무를 하기엔 자질은 있었는지 몰라도 부족한 게 많았다. 그때 C 부장님은 답답할 법도 한데 내가 뭘 해야 할지 하나하나 짚어주면서 날 이끌어줬다. 그리고 일정 수준의 업무 능력을 보이자 내게 최대한 업무상 자유를 주었다. 어떤 영업활동을 할지 마케팅 활동을 할지 재량에 맡겨두었고 혹시 부족한 게 있을 때만 본인 생각을 내게 알려주었다. 그러면서도 상하관계가 아니라 같이 업무를 하는 동료로서 인식하게끔 하면서 마음을 편하게 해 줬다. 부득이 내가 맡은 사업부를 정리하고 나갈 때도 내가 부담 가지지 않게 마음 편히 보내려 노력했고, 특별 퇴직금까지 두둑이 챙겨 보내줬다. 이런 상사를 만났을 때에는 입을 다물고 따라가는 게 좋겠다. C 부장님이야 사람도 좋은 분이라 내가 따라가기 수월하긴 했지만, 만약 인간적으로 힘들게 했어도 따라갔을 것이다. 내가 성장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분하고도 한국에 있을 때 일 년에 두세 번은 꼭 만나 식사를 하면서 회포를 풀만큼 가까운 사이로 남았다.
자유방임형 상사는 어떤가? A 상무가 떠오른다. 사람에 따라서는 힘들어하기도 했지만, 난 일하는 건 너무 편했다. 거의 내 판단에 맡기는 편이었고, 큰 잘못이 없는 한 그냥 내가 하는 대로 뒀다. 내 업무 능력이 어느 정도 올라왔을 때 만난 분이라 다행이다. 내 업무 능력이 다소 모자란 시점에 만났다면 서로 좋지 않게 헤어졌을 가능성이 높은 상사다. 단점도 당연히 있다. 실무를 잘 모르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따라서 가르쳐서 이끌어줘야 할 직원에게도 내게 했던 것처럼 자유방임을 하니 일이 삐그덕거리기가 무척 쉽다. 요즘은 임원이 됐다고 실무를 몰라서는 조직을 이끌기가 어렵다. 너무 세세하게 짚어 일을 하면 임원이 아니라 대리나 과장이냐는 비아냥을 듣겠지만, 실무를 모르면 일이 되지 않는다. 이런 분들과 일할 때는 상사로 예의를 갖춰 모시되 일은 내가 상사가 된 것처럼 상사를 리드해야 한다. 실무를 잘 모르기 때문에 이런 상사 말을 믿고 일을 추진하다가는 일이 좌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주의해야 할 것은 적당한 타이밍에 내가 하는 일에 어느 정도는 관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점이다. 내가 하는 일에서 너무 상사를 떼어놓으면 도움이 필요할 때 상사를 활용할 수 없다. 상사와 적당한 선을 잘 타야 한다는 말이다.
최악의 상사는 어떻게 활용할까? L사에서 만난 P 차장이 떠오른다. 이런 사람은 조직에 있으면 안 되는데, 안타깝게 꼭 있다. 팀장 역시 실무를 해야 했던 시절, P차장은 하루 종일 아무 일을 하지 않고 직원들 일하는 거 지켜보기만 했다. 그러면서 얼마나 잔소리는 늘어놓는지 짜증이 날 정도였다. 사원인 내가 들어도 '얕아 보이는 지식'으로 직원들을 갈구기나 할 뿐, 대체 뭐하는 사람인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본인은 1주일에 한두 번은 꼭 지각하면서 5분 늦은 직원을 회의 시간에 갈구질 않나, 직원을 시켜 자기 차를 주차장에 넣고 오라고 하질 않나, 정말 학을 뗐다. 내가 회사를 떠나던 날 그 사람 표정도 기억이 난다. 내가 상무와 면담을 하러 다녀오자 나를 보는 그 사람의 눈빛에서 초초함을 느꼈다. 혹시나 본인에게 해가 될 말을 하지 않았나 하는 눈치였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짜증 나는 상사였다. 이 당시 이런 상사를 활용할 능력이 내게는 없었다. 그때 당시 나로서는 이런 상사는 피하는 게 답이었다. 실제로 이 사람 때문에 이직했고, 나 말고도 같은 팀에서 3명이 팀을 떠났다. 그래도 지금이라면 적당히 일을 해 주면서 같이 일하고 싶지는 않으니 내가 원하는 부서로 전보를 갈 수 있게 살살 꼬드겼을 거 같긴 하다.
재미있는 건 직장 생활을 하는 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한다면 상사를 고를 수 없다는 점이다. 그리고 직장 상사와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직장 생활의 성공을 좌우한다. 더더군다나 한 조직에서 더 높은 자리로 갈 생각이 있는 사람은 어떤 상사를 만나더라도 반드시 내 편으로 만들어야 한다. 적어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상사가 뜨뜻미지근하게나마 서포트할 수 있어야 한다. 혹시 그럴 욕심이 없더라도 상사를 적으로 만드는 순간 회사는 지옥이 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상사와 잘 지낼 수 있을까?
그 첫걸음은 상사도 나랑 같은 사람이라는 점을 마음속에 새기는 것이다. 상사 역시 나처럼 장점도 단점도 있는 사람이다. 나 스스로에게 하는 것처럼 상사에게 너그러운 마음으로 대하는 게 좋다. 상사가 실수를 하더라도, 설사 못난 짓을 하더라도 너그럽게 봐주는 게 나를 위해 좋다. 두 번째로는 상사와 일하면서 생기는 트러블을 개인적인 것으로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즉 감정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게 좋다. 상사와 난 가족이 아니다. 일을 하기 위해 만난 사람이니 감정을 가능한 쓰지 않는 게 좋다. 간혹 상사가 화를 낸다거나 싫은 소리를 하기도 한다. 나도 직장 생활 초기에는 그런 걸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나 직장 생활에서는 내 감정을 쓰는 게 낭비라는 생각에 어떠한 일이 생겨도 개인적인 일로 받아들이지 않게 됐다. 마지막으로는 성과를 내는 것이다. 상사는 원래 자기 부하직원의 성과로 먹고사는 사람이다. 밉던 곱던 성과를 내주는 직원이 최고다. 최소한 이용해 먹기라도 해야 하기 때문에 상사는 성과를 내는 직원에게 기본은 하기 마련이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상사와의 트러블로 회사를 떠난다. 상사에 대한 기대치를 낮추고, 가능한 상사와의 일에 감정을 적게 쓰면서 성과를 낸다면, 상사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는 일은 줄어들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상사를 어려워하지 말고 활용할 생각을 해라.
P.S. 혹시라도 외국계 회사에 대해 궁금한 사항이나 도움이 필요할 경우 아래 메일로 문의를 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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