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불운을 경험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평생직장이 될 줄 알았던 D사가 내가 속한 사업부를 매각한 것이다. 회사를 향한 배신감이 극에 달했고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나를 포함해 영업/마케팅 직원의 절반이 회사를 떠났으니 나만 이런 생각을 한 건 아닌 거 같다. 하지만 이 불운은 J사에서 세일즈를 경험할 수 있게 한 계기도 되었다. 의사를 상대로 영업하면서 사업개발을 해보니 어떤 물건이든 팔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애초에 세일즈와 거리가 먼 사람인 줄만 알았으나 세일즈가 나의 Key Capability가 되는 기적과 같은 일을 경험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는 J사에서 내가 맡았던 사업부를 한국 시장에서 철수했던 일이다. 한국 시장 철수를 막아보려고 나와 내 매니저가 한국 대표뿐 아니라 전 세계 메디칼 사업을 총괄하는 부회장에게도 한국에서만은 철수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결국 사업부는 철수됐고 이를 계기로 현 회사에서 B2B 세일즈를 맡아 영업 담당 이사로 근무할 수 있게 되었다. 고객사의 담당자부터 대표까지 상대를 해 영업을 할 수 있는 회사가 그렇게 많지가 않은데, 용케 이런 회사랑 연이 닿아 행운이란 생각이다. 또 J사에서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은 당연하다. 덕분에 짧은 시간 내에 맡은 고객사를 현격한 성장을 이루게 했고, 한국/일본 사장님 눈도장도 찍게 되었다.
마지막으로 싱가포르에 오면서 원래 가기로 이야기가 되어가던 회사에 가지 못하게 된 게 그 당시에는 불운이었으나 지금 생각해 보면 행운이란 생각이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전 세계가 서로의 국경을 닫고 있는 상황에 스타트업에서 발이 땀이 나게 동남아 지역을 뛰어다녀야 할 세일즈를 하는 것은 어려가지 면에서 무리다. 만약에 그 회사에 입사했다 하더라도 좋지 않게 퇴사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역시 불운이 행운으로 바뀐 경우다.
이렇게 불운이 행운으로 바뀌는 것은 내 개인사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와이프를 만나게 된 계기가 그것이다. 와이프는 내 동문 지인의 친구로 다른 동문과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옆에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는데 내 이야기에 귀 기울이는 모습에 반하고 말았다. 연락처를 물어보려다, 끝내 용기를 내지 못해 헤어지게 됐는데, 아무래도 다시 보지 못하면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스쳤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끝내 용기를 내지 못한 게 불운이 아니라 행운이었다. 만약 그 자리에서 연락처를 직접 물어봤으면 와이프는 거절했을 거라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그 당시 와이프는 고시를 준비 중이라, 다른 사람을 만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뒤늦게 친구를 통해 연락처를 받아 연락을 해 밥이나 먹자고 만남을 제의한 게 와이프의 경계심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었다.
어차피 인생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다. 이 밖에도 살면서 내가 겪은 불운을 살펴보면 내가 뭘 어떻게 할 수 없는 게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내가 컨트롤할 수 없는 그 불운이 그 당시 내게 악영향을 미친다 하더라도 그게 시간이 훌쩍 지나간 후에 내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는 가늠하기 어렵다. 따라서 혹시라도 지금 내가 원하는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그렇게 실망을 할 일만은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다. 지금 겪은 불운이 후에는 행운으로 바뀌는 경우도 허다하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