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소서 작성법 강의에서 한 꼭지로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쓰지말라는 말을 강조하곤 한다. 모호하고 추상적으로 쓰다보면 글이 불필요하게 길어지고, 동문서답을 하기 때문이다. 예를들어 '당신의 강점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에 '분석력', '논리성' 등으로 명료하게 답하는게 아니라 '대학교에서 동아리 총무를 맡으면서 꼼꼼하게 업무를 처리하는 법을 배웠고, 졸업한 선배들과 교류를 통해 인사이트를 키울 수 있었습니다'라는 식으로 모호하게 답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모호하게 혹은 추상적으로 쓰지말라는 팁을 주는데, 정작 취준생들이 글을 쓸 때에는 막막하게 생각하기 마련이다. 냉정하게 말하면 모호하게 글을 쓴다는 말은 아직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에 대해 정리가 안됐다는 말이다. 그걸 숨기기 위해 광범위하게 이야기하거나 다른 이야기를 주절주절 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 학생이 이런 팁을 배우고 나서 자소서를 써서 피드백을 요청해 왔다. 모호하게 쓰지말고 구체적으로 예리하게 쓰라고 해서 굉장히 구체적으로 내용을 작성했다. 커뮤니케이션이 강점이라고 해서 자신이 인턴을 하면서 커뮤니케이션 했던 사례를 굉장히 구체적으로 적은 것이다. 근데 이것 또한 좋지 않은 글쓰기다. 구체적으로 적으라는 말이 사례를 구체적으로 적으라는 말이 아니다. 면접관은 지원자가 "대방동 울트라캡숑에이스파워 조기 축구회 7기 총무를 3년 7개월 간 역임"했다는 사실에 전혀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사례를 구체적으로 적는 순간, 글은 굉장히 지루하고 읽기 싫어진다.
모호하게 적지 말고 구체적으로 글을 쓰라는 말은 생각과 철학을 구체적으로 쓰라는 말이다. 단연코 사례를 구체적으로 쓰라는 말이 아니다. 커뮤니케이션이 강점이라고 한다면 자신이 생각하는 커뮤니케이션이란 무엇인지, 커뮤니케이션을 잘한다는 건 무엇인지, 어떤 역량이 중요한지에 대한 자신의 만의 관점을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야한다. 그 뒤에 보조적인 근거자료로서 사례를 간략히 넣는 것이다. 사례가 메인이 되서 구체화되면 안된다.
자신의 생각과 철학을 구체적으로 쓰기 위해선 결국 나 자신에 대해 알아야 한다. 내가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방향으로 XX을 보는지에 대해 정립이 되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차리지 못한 사람은 자소서 쓰기가 어려울 수 밖에 없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데 어떻게 소개를 할 수 있을까? 나를 알아차리는 게 먼저이고, 그게 됐다면 질문에 대해 구체적이고 예리하게, 명료하게 작성하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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